한때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23전 23승의 명장이라 칭한 적이 있다. 으레 그렇듯 조상을 대하는 모습에 우리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승리의 횟수로 이순신 장군의 삶과 얼을 대한다는 건 참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만큼 우리는 눈에 보이는 숫자나 양적 크기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253회의 전투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부대가 있다면 믿겠는가? 주인공은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강뉴 부대다. 총 6,037명이 참전하였고, 그중 123명이 전사, 536명이 부상당했지만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 심지어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은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수습하였고, 포로로 잡혀간 이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불패의 부대였다. 강뉴(Kagnew)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 '적을 격파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7년 6월 3일자 <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제114화 "저 너머에 '황제의 길'이 있다"에서 보았듯이, 한국은 에티오피아에 큰 은혜를 입었다. 유엔군 파병을 호소한 셀라시에 황제의 유엔총회 연설과 황실 직속 부대 파병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온 병사들은 왜 그토록 남의 나라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싸웠던 것일까? 이들의 용맹스런 전투 배경에는 셀라시에 황제의 출사표가 있었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란 특명을 내렸다고 한다. 그만큼 침략과 망국의 아픔은 아프리카와 한반도를 하나로 묶는 끈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아원을 짓는 등 한국을 온 정성으로 도왔다.

1968년 셀라시에 황제가 박정희 대통령의 초대로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부산 유엔묘지를 방문하고, 거제도를 방문하여 '황제의 길'이 생긴 이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에티오피아는 차츰 잊혀졌다. 1974년 일어난 공산화 쿠데타로 인해 황제는 폐위되었고, 한국전에 참전해 공산국가들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은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혀 철저하게 핍박받았다. 이후 이들은 빈국인 에티오피아에서도 최빈민층으로 힘겹게 살아가게 되었다.

최근들어 에티오피아가 다시 우리 언론에 오르내리며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외국 지원사업에서 에티오피아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6.25 참전국을 우선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의 진단 키트 제공과 경제 지원 등 다양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지원해오던 활동들도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검은 대륙의 은인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4월초 마다가스카르와 카메룬에 있던 교포들과 코이카 국제협력단원들이 코로나를 피해 귀국하는 과정에서 에티오피아는 형제국의 우정을 보여주었다. 이미 마다가스카르와 카메룬의 공항이 폐쇄되었는데, 에티오피가 적극 나서서 공항을 개방하도록 주선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민들을 싣고 나온 것도 에티오피아 국영항공사의 비행기였다. 아프리카국가연합의 본부 소재지로서 에티오피아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아마세크날로(감사합니다)”

어제의 기억이 내일로 가는 길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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