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라는 영화를 보며 페르시아 세계에 흥미를 느꼈다. 학창 시절 즐겼던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서 더욱더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최근 "오징어 게임"이라는 영화가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드라마, 영화, 스포츠, 음악을 넘어 골목길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놀이가 한류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동의 고대 제국 페르시아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어쩌면 익숙한 나라일 수도 있다.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이슬람과 우리나라는 역사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었던가? 또 앞으로는 어떤 이웃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통영이 이슬람과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은 없지 않다(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제276화 "신밧드, 통영을 탐험하다" 2020년 12월 5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씨줄로, 한 줄기의 심증을 날줄로 해서 이야기를 엮어본다.

통일신라와 발해로 이루어진 2국 시대에 완도를 중심으로 설치된 청해진은 해적을 소탕하고 동북아시아 해상무역을 관장하였다. 845년 장보고가 피살되고 청해진이 철폐되던 해에 아랍 상인이 직접 신라에 진출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이븐 쿠르다드비가 쓴 <왕국과 도로 총람>이라는 책에 남아 있다. 그전까지 중국 양주 이남의 해상무역은 아랍 상인들이, 양주 이북의 동북아시아 해상 무역은 신라의 청해진 상인들이 분점하고 있었다.

"중국의 동쪽 항주의 맞은편에 신라가 있다. 그곳에는 산이 많고 금이 많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비단, 검, 사향, 말, 안장, 도기 등이 있다. 신라에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 정착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왕국과 도로 총람> 신라의 산과 바다, 고을은 머나먼 서역인들이 영구 정착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비잔틴제국과 300년간 경쟁하던 페르시아제국이 새롭게 일어난 아랍에 의해 650년경 멸망한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가 아들 페로즈 3세를 당나라로 망명시켰다. 하지만 651년 당나라 고종이 아랍제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페르시아 왕자 일행을 국외로 추방한다. 하지만 왕자는 아비틴이라는 이름으로 신라로 재차 망명하였고, 신라는 이들의 망명을 수용하였다.

삼국통일 전쟁을 겪고 있던 신라는 이들로부터 첨단 기술과 무기, 군사전략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가 660년, 668년 연이어 무너진 후 신라까지 점령하려는 당나라에 맞서 신라는 전쟁을 선포했다. 7년 전쟁을 통해 세계 최강국을 막아낸 신라의 전설 같은 승리의 배경에는 아비틴 왕자 일행의 기여가 있었으리라.

아비틴 왕자는 신라 공주와 결혼하여 아들 페리둔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부왕의 유언에 따라 조국 독립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세상을 통일해버린 아랍의 힘을 극복할 수 없어 아몰이라는 산악지대에 은둔 왕국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신라 왕실의 외손인 페리둔 왕자를 위해 신라의 기후, 지리, 천문, 궁중 의례, 음식, 인문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을 남겼다. 이 내용이 구전되어 오다 후대에 책으로 기록된 것이 <쿠쉬나메>인데, 2009년 영국 국립도서관 희귀문서실에서 발굴되었다. 전체 820쪽 중에서 500쪽가량이 신라에 관한 내용이다. 그 속에는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페리둔 왕자가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도왔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영화 속 페르시아 제국의 다스탄 왕자와 신성한 나라 알라무트의 타미나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 아비틴과 신라의 외손자 페리둔 왕자의 기억이 통영 사람의 DNA에 스며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한의 다도해와 옛 페르시아의 땅 중동을 오가는 대서사시를 만화로, 소설로, 영화로, 게임으로 만들어낼 사람이 이미 통영에 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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