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바다와 섬에 익숙하다. 통영 사람에게서는 늘 갯내음이 나고, 섬을 닮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통영 사람에게서 섬과 바다를 지우면, 희멀건 인형 하나 남는다.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들려주는 통영 바다 이야기, 첫 번째 주제는 '바다와 섬'이다. 오랜 세월 섬을 꿈꾸며 섬을 연구해온 광주전남연구원의 김준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과 함께 바다와 섬을 다시 만나보았다.

강연 첫머리, 내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통영 바다와 섬을 처음 만난 외지 사람처럼. '섬을 바라볼 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만 보지 말고, 인근의 바다와 섬의 숲을 함께 보자.'

사람과 자연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경제와 환경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극복하자면서도, 마을과 바다와 숲을 함께 바라보지 못했다.

놀라움은 늘 상식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다. 마을과 숲과 바다를 따로 보는 버릇에 갇혀 살았던 이에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자고 나면 '섬 이야기'가 쏟아지는 날들. 우리가 말하는 섬 이야기 속에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와 숲 이야기는 얼마나 들어있을까?

물 위의 땅에 사는 사람만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없으면 섬의 삶은 유지되지 못한다. 숲이 없어도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삶과 바다와 숲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바다와 숲이 건강하지 않으면 삶도 건강할 수 없다. 간암 말기 환자가 튼튼한 심장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섬은 섬 주민만의 것도 아니요, 관광객의 것도 아니요, 섬 자체의 것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섬의 권리를 생각해본 적 있었던가. 갯벌과 주변 바다, 섬 숲의 생태계가 지속되고, 섬마을의 문화와 주민의 삶이 지속될 수 있는 권리. 누구 하나의 권리가 아닌, 섬의 모든 것이 어우러진 집합체의 권리. 이 권리를 늘려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되는 관광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숨 쉬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반려자로서의 섬 숲과 바다. 마을과 숲과 바다가 들려주는 섬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것은, 겸손을 가르쳤던 옛사람들의 지혜이자, 지속가능한 섬을 향한 첫걸음이다.

온전히 귀 기울이기는 주민과 이주민 사이에도 필요하다. 귀농, 귀촌, 귀어하는 이들이 섬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민들은, 섬마을 사람들이 섬과 마을을 지키면서 쏟은 땀을 인정하고, 오랜 세월 일구어온 삶의 지혜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주민들은 이주민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섬을 지키며 살아갈 사람으로 인정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낯선 시도와 노력을 배척하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럴 때 섬에 변화가 시작된다.

외지 사람들 보기에 예쁜 섬, 관광객 덕분에 주머니가 넉넉한 주민들,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곳, 주민과 관광객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섬. 사람에게만 집중된 이런 이야기 대신에, 섬 연안의 생태적 지속가능성, 섬의 중심부를 이루는 숲의 건강성, 그리고 이들과 함께 새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희망찬 이야기가 통영 바다와 섬에서 피어나길 소망한다.

저자 주. 호모 나란스 시리즈는 (사)통영생태문화시민학교가 주관한 통영시민학교 시즌10 <통영 바다 이야기>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