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는 통영만의 문화가 있다. 통영의 색깔이라고도 할 수 있고, 통영다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영 문화가 어떤 것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저마다 쌓아온 경험에 따라 통영 문화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 자부심도 다르다.

바다를 두르고, 갯내음 속에서 살아온 통영 사람의 문화는 다른 지역의 문화와는 다르다. 통영 문화는 통영 바다와 함께 한 삶의 문화이다.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들려주는 통영 바다 이야기. 다섯 번째 주제는 '바다와 삶의 문화'이다. 새 관찰 전문가이자, 생태문화 전문가인 김억수 님과 함께 했다. 자연 속에서 살아온 지역민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는 현장 중심의 연구 결과를 담아 <생물문화다양성과 전통생태지식>을 펴냈다.

생물문화다양성은 생소한 개념이다. 생물, 문화, 다양성의 복합어다. 가운데 자리 잡은 '문화'의 뜻부터 살펴보자. 사전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 되는 행동 양식",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삶의 모든 것'이다.

그러니 생물문화다양성은 생물 또는 생명과 관계 맺으며 살아온 인간 삶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물문화다양성은 "생명의 다양성과 함께 이와 관련하여 생물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통영의 연안과 뭍과 섬에서 뭇 생명을 일구고, 거두고, 먹고, 팔고 살아온 통영 사람들의 삶에는 다양한 문화적, 언어적 자산들이 존재한다.

주변에서 쉽사리 보는 갈대만 하더라도 문화적, 언어적 자산들이 많다. 갈대와 관련한 이름만 해도, 갈, 깔, 깔뿌리, 깔끙이, 갈바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갈꽃으로 빗자루를 만들어 쓰기도 했고, 흙집 건축 재료로도 썼다. 채반이나 발, 돗자리 등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사용되었고, 갈끙이라고도 불린 갈대 뿌리는 이뇨, 소염, 해열, 해독 효과가 있어 약재로 이용하였다.

갈대밭은 수질 정화 기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웅어 같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개개비 등은 이곳에 둥지를 튼다. 이곳에 바닷게들이 살면서 갈대를 먹기도 하고, 게가 펄에 구멍을 내어 산소 순환을 촉진해 갈대 서식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에 게가 등장한다.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고 늘어진 모습인데, 과거시험을 앞둔 이들에게 선물로 그려주던 그림이다. 게 껍데기가 '갑(甲)'에 해당하니, 무려 장원급제다. 그림 제목으로 쓴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은 "바닷속 용왕님이 계신 곳에서도 나는 옆으로 걷는다"라는 뜻으로 임금 앞에서도 소신을 펴라는 뜻을 담았다.

이렇듯 보잘것없어 보이는 풀에도 무수한 생물적, 문화적, 언어적 자산이 담겨있다. 이런 자산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찾아내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통영에는 이런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최광수의 통영이야기 - 257> "연암, 통영을 말하다 7"(2020년 5월)에서 썼듯이, "무엇보다 바다와 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야 한다. (바다 생물들을 앞에 두고) 글이 없으면 생각이 뒤처지고 먹는 입이 앞서간다. 입은 탐욕스러워 금세 쾌락과 과욕을 부추기게 된다. 쾌락의 입은 줄이고, 사유와 성찰의 입을 늘릴 때 나와 너와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저자 주. 호모 나란스 시리즈는 (사)통영생태문화시민학교가 주관한 통영시민학교 시즌 10 <통영 바다 이야기>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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