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바다는 이야기의 보물 창고다. 보물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주 꺼내어 닦고, 햇빛에 비추어 보고, 주변에 자랑할 때 더욱 빛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다른 이에게 선물할 때이다.

통영 바다의 보물 '이야기보따리'를, 상처 입은 이들에게, 꿈을 잊은 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찾는 이들에게, 앞만 보고 달려와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물하면, 받는 이는 물론이요, 선물하는 이도 행복하다.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가 들려주는 통영 바다 이야기. 일곱 번째 주제는 '바다와 이야기'이다. 저자가 지난 7년 가까이 한산신문에 매주 연재해온 <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중에서 '바다 이야기'를 가려 뽑았고,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걸쳐있는 통영 사람들의 '그'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통영 바다는 한 마디로 '섬.섬.옥수(玉水)'다. 섬과 섬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옥빛 바다. 이 바다가 통영 사람들에겐 요람이요, 재산이요, 희망이요, 안식처요, 삶 자체다. 이 바다에 물들면 누구라도 "통영 환자"가 된다. 주변에서 이런 분들이 종종 목격된다. 섬섬옥수에 물든 통영 환자들의 삶은 빛깔과 향이 다르다.

통영 섬들은 고립되어 외롭지 않다. 그렇다고 집단으로 뭉쳐있어 답답하지도 않다. 사람들도 그렇다. 적당히 떨어져 있어 개성이 강하고, 적당히 가까이 있어 네트워크가 튼튼하다. 뭉쳐야 할 때 뭉치면서, 개개의 권익과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다.

'물의 나라(水國)' 통영은 다도해(多島海)다. 통영에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다도해 때문이다. 570개의 섬과 섬을 오가는 이들이 중중첩첩 엮어낸 이야기가 부지기수다. 섬이 많다는 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섬이 많은 바다에서 살며 다듬어진 통영 사람들의 기질과 사고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관점이 서면 인생은 달라진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혁명가들은 관점부터 달랐다.

변화의 시대, 도시의 흥망성쇠와 국가의 명운이 갈라지는 시대에는 혁명가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청나라 탐방기 『열하일기』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읽고, 역사와 새 역사의 씨줄 위에 민생과 혁신, 정치의 방향을 날줄로 엮어 정조 시대에 파란을 일으켰던 연암 박지원 선생. 1795년 이순신 장군 치제(致祭)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을 방문했던 연암 선생이라면,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21세기형 열하일기, 『통영일기』를 써서 통영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통영은 경제와 문화가 번성한 두 차례의 전성기를 누렸다. 군수산업과 공예산업으로 조선 제일의 도시가 되었던 영정조 시대, 수산업의 활황으로 돈이 넘쳐났던 근현대기. 제3의 르네상스를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을 구하라, 사람의 뜻을 구하라". 관용(tolerance)이 높은 곳에 인재(talent)가 모여들어 기술(technology)이 발전하는 '경제발전의 3T 이론'은 연암의 붓끝과 닿아있다. 통영 태생의 통영 사람만으로는 과거의 전성기를 꿈꿀 수 없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자 주. 호모 나란스 시리즈는 (사)통영생태문화시민학교가 주관한 통영시민학교 시즌10 <통영 바다 이야기>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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