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히팝' 세계초연 현장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그랑히팝' 세계초연 현장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힙합은 리듬을 위주로 한 언어 음악 예술이며 래퍼라는 연주자/연기자는 복잡한 리듬을 위주로 스토리텔링 및 대개 비판적인 자기주장을 하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과거의 오스티나토와 레치타티보와 유사하며, 큰 차이점이라면 문장들과 단어들을 라임 중심으로 빠르게 욱여넣는다는 점이 있다. 또한 정형화되지 않고, 매우 외향적이며 외설적이기까지 한 특징은 힙합을 - 음악적 요소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 놀랍도록 강렬하며 다양한 음악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윤한결 선생이 '그랑히팝'(Grande Hipab)이라는 작품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현대음악 작곡가가 대중음악 장르인 힙합에 관해 얘기하다니 신기합니다. "힙합 장르의 특징을 패러디와 재해석을 통해 현대적으로 표현"했다는 작품 '그랑히팝'은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요하네스 칼리츠케가 지휘한 TIMF앙상블이 세계초연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의 단원들이 객원 연주자로 참여했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10월 7일과 8일에 걸쳐 신작 다섯 곡이 세계초연되었고, 두 곡이 아시아초연되었습니다. 작곡 부문으로 열린 2021 TIMF아카데미를 위한 작품 공모를 거쳐 위촉작곡가로 선정된 작곡가들의 작품이었고, 그 가운데 첫날 공연을 제가 지난 글에서 소개했었지요. 이틀간 열린 'TIMF아카데미 콘서트'에서 연주된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곡이 바로 '그랑히팝'이었습니다.

'그랑히팝'은 그러나 힙합 음악의 장르적 느낌이 나는 곡은 아니었습니다. 힙합과 닮은 점을 굳이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현대음악의 정체성 안에 대중음악적 요소가 숨어 있는 정도였지요. 음악이 "띠용~" 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점, 또 어찌 들으면 사람을 놀리는 듯하고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 떠오를 것 같은 음형이 변형·반복되는 점이 재미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다양한 악기와 연주법을 조합해 만들어 내는 음향적 스펙터클과 통통 튀는 리듬 등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작곡가인 동시에 지휘자이기 때문일까요? 윤한결 선생은 현대음악 맥락에서 '멋진 소리'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음향적 '팔레트'를 매우 다채롭게 가진 작곡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세계초연된 곡 중 이승환의 '<제사> - 고 윤이상 선생의 묘에서'(Rituel... au tombeau d'Isang Yun)는 일단 제목부터 솔깃한 작품이지요. 이승환 선생은 가톨릭교회의 위령 기도가 한국에서 토착화한 연도(煉禱)를 그간 연구해 왔다며 '제사'라는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고 윤이상 선생께서 통영의 바닷가 언덕에 안장되신다는 소식을 접했고, 작품 <제사>가 음악 바깥으로는 떠난 이를 추모하는 성격으로서 선생의 삶을 기리고, 안으로는 우리 상장례음악의 영향과 선생의 작곡기법 등을 응용한 오마주 작품이 될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승환의 '제사'는 긴 호흡으로 제의적 느낌을 주는 음향적 풍경 사이사이에 드라마틱한 '장면'이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듯한 짜임새였고, 그에 따른 '드라마투르기'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치 고인의 삶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수빈의 '옥텟'은 아쉽게도 제가 공연 현장에서 감상하지 못한 작품인데, 그 대신 리허설과 공연 실황 영상을 감상한 소감을 짧게 써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중세 다성음악에서 정선율(Cantus firmus)을 활용하는 방식을 흉내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곡에 나온다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귀로 들어서 알아챌 수 없었고, 딱히 이 곡에서 중세음악 느낌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중세 또는 르네상스 시대 작품에 나오는 정선율이 주로 '테노르'(tenor) 성부에 숨어 있어서 귀로 듣고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일까요.

작곡가는 이 곡이 "만약 현시대에 중세시대 작곡가가 환생한다면 우선 첫 작품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작곡자의 상상에서 시작한 작품"이라 했습니다. 이 작품의 길게 이어지는 음들에서 저는 차라리 한국 전통음악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곡은 들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음악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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