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무역상이었던 주앙 멘데스는 당시 화폐인 은(銀)을 휴대하였고, 그 은이 마야문명과 아즈텍 문명에서 생산된 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인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은 은 문화를 꽃피우던 시절이라, 침략자들은 은 세공품을 녹여서 은괴로 만들어 유럽으로 가져갔다. 이렇게 탈취한 은이 차와 도자기 무역으로 명, 청으로 유통되었다.

당시 청나라에는 '은'을 다루는 상인조합 '행'이 있었는데, 여기서 지금의 은행(銀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애초 영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모직물을 중국에 수출하고 은을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중국은 모직물에 관심이 없었다. 서민들은 면직물과 베옷을 입었고, 부유층들은 비단옷을 입었다. 오히려 청에서 차와 도자기를 수입하면서 영국의 은이 청나라로 더 흘러갔다. 그래서 은을 되찾기 위해 영국이 인도를 통해 아편을 청에 수출하였고, 이를 막으려는 청을 향해 영국이 도발한 전쟁이 아편전쟁이었다.

중국에 아편이 만연한 데는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한 절망감이 크게 작용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그런데도 치안이 안정되고, 생산성이 높은 것은,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면서 국민들이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된 영향이 크다. 그런데 국가 발전의 방향을 잃고,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희망의 중심인 청년 세대가 좌절하면 한국호가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최초의 서양 도래인을 두고, 제주도에서는 2003년 사계리에 하멜상선전시관을 건립하며 하멜의 표착(1653)을 크게 기념하였고, 2004년 통영시도 포르투갈 정부와 협력하여 주앙 멘데스의 도래(1604)를 기념하며 큰 비석을 남겼다.

어느 쪽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양 도래인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새 역사를 준비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두 사건 모두 표류로 인한 비자발적 도래이자, 구금과 압송으로 진행된 비호의적 만남이었다. 한쪽에선 강제노역이 있었고, 한쪽에선 전투까지 있었다.

한국은 이제 문화 강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섰다. 침략하는 강대국이 아니라, 인류가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문명을 이끌어가는 모델 국가이자, 새 문명 개척을 위한 소통의 허브 국가가 되어야 한다. 영화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오영수 씨 말대로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니라, 한국 속의 세계"를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구 저편의 사람이 어찌어찌해서 '은둔의 나라'에 들어온 과거의 사건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며 인류 공영의 새로운 천 년을 꿈꿔보자. 이 꿈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마칠 것인가? 통영 사람은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