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방산(碧芳山)은 '푸른 밥그릇' 산이다. 원래의 이름도 그랬고, 지금도 벽방산에 있는 사찰에 가면 벽발산(碧鉢山)이라 쓰고 있다. 벽발 보다 발음하기 쉬운 벽방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푸를 벽, 바리때 발. 바리때는 전통사찰에서 사용하던 그릇으로 발우(鉢盂)라고도 한다.

누가 언제 지은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의 뿌리는 2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쓰던 바리때를 제자 가섭존자에게 전하니 이를 들고서 미래에 올 미륵부처(彌勒佛)를 기다린다는 불교 설화에 기인한다. 불교에서 가사와 발우(의발衣鉢, 옷과 그릇)는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는 상징으로 통한다.

통영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가장 먼저 도래한 가야에 속했던 땅으로, 전통적으로 불심이 깊은 곳이다. 그러니 불교 설화에서 따온 지명이 참 많다(최광수의 통영 이야기 제297화~제302화, "통영의 불교 지명 이야기 1~4" 2021년 8월~10월). 벽방산은 푸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눈 푸른 수행자가 세상을 구제할 부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벽방산은 통영, 거제, 고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650.3m). 산이 높은 만큼 정상에 서면 시선이 멀리까지 가 닿는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벽방산 정상을 찾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시선이 좁아서였을까.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이야기 또한 많기 마련이다. 벽방8경은 자연 속에서 인간이 만난 깨우침이자 낭만이라 무척 기다려진다.

제8경 한산무송(寒山舞松)은 안정사 입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안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푸르디푸른 기운이 가득하여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기에 좋다. 이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조선 왕실이 발행한 금송패(禁松牌)가 안정사에 3개 있다고 한다. 소나무 벌목을 단속하고 감시하는 권한을 부여한 일종의 신분증이다.

안정사는 삼국통일 전쟁이 한창이던 654년 원효대사가 지어 한때 전국 굴지의 사찰 규모를 가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영조 27년(1751)에 다시 지었다. 그 후 대웅전은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으며, 철종 3년(1852)에 다시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안정사에는 유물이 무척 많다. 대웅전에는 고려 공민왕 때 조성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누각 만세루는 경남문화재자료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란 직전인 1580년 만들어진 범종과 숙종 28년에 조성한 높이 10m가량의 괘불이 있고, 큰 행사 때 불상과 경전 등을 옮기는 데 쓰는 채여(彩輿)가 있다. 하지만 괘불과 채여는 1993년 도난당하였다.

안정사 주변에는 가섭암, 의상암, 은봉암 등의 암자가 있다. 가섭암은 안정사와 같은 해에 원효스님이 지었다고 하는데, 큰절인 안정사보다 먼저 지어진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부처님의 으뜸 제자였던 가섭존자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669년 원래의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어졌다.

저자 주. 사진은 여름철 한산무송의 모습입니다.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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