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고유한 대표 음식이 있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부산 동래파전, 전라도 젓갈과 홍어, 제주 옥돔 등이 떠오른다.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통영너물밥과 충무김밥, 시락국, 도다리쑥국, 다찌, 통영 꿀빵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지역 특색 음식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 고유 음식이 유명해지면 곳곳에서 너도나도 팔게 되고, 맛집의 레시피도 손쉽게 유통된다. 덕분에 음식이 획일화되고, 지역 특성이 소멸하고 있다.

천안 호두과자와 경주빵,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마산 아귀찜을 비롯해 수많은 음식이 그 길을 걷고 있다. 너무 흔해졌다. 원조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 '맛'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 고장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강렬함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단품이 아닌 상차림 문화는 쉽게 따라 하거나 획일화되기가 쉽지 않다. 통영의 다찌는 다른 지역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설혹 흉내를 낸다고 하더라도 구관조가 사람 목소리 흉내 내는 수준이다. 철마다 바뀌는 신선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고, 오랜 세월 만드는 이와 즐기는 이들 몸에 밴 애정을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찌는 통영에 와야 만날 수 있다.

다찌는 한 상 가득 차려내는 진수성찬이다. 열 가지, 스무 가지로 이어지는 해산물의 향연장이다. 우리네 전통 한식의 상차림 그대로 한 상 가득 차려지는 '공간 지향형' 요리상인 동시에,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차려지는 '시간 지향형' 상차림이다.

한 상 가득 차려졌는가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요리가 계속 보태진다. 그렇다고 한 번에 하나의 요리가 차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통영 다찌는 우리 전통의 한 상 문화와 코스 요리 문화를 융합한 형태이다. 일찌감치 공간과 시간을 융합한 미래형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다찌를 즐길 줄 아는 통영 사람은 이미 미래 문화의 창달자요 향유자다.

통영 사람만이 아니라 이제는 관광객들까지 즐겨 먹는 다찌는 비록 일본의 선술집 문화가 통영 전통 음식문화와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지만, 일본에는 없는 독특한 통영 고유의 문화가 된 것이다.

전식부터 본식, 후식으로 이어지는 직선형 상차림은 요리 하나하나가 갖는 맛의 절대적 가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요리와 요리 사이에 술이나 음료 등으로 입안을 게워내는 과정도 있다. 일본 초밥에서도 생강이 그런 역할을 한다. 요리와 맛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반면 우리의 한 상 문화에서는 한눈에 다 들어올 수 있게 상을 차린다. 그러고는 이 음식과 저 음식을 번갈아 가며 맛을 본다. 그러니 요리 하나하나의 맛보다는 음식과 음식의 조화, 맛과 맛의 어우러짐이 중요하다. 맛의 개별적, 절대적 가치보다 맛과 맛의 통합적, 상대적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런 음식 문화의 차이는 동서양의 철학적 관점의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 기호와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서구에서는 사물 하나하나를 개별적 존재로 바라본다. 그래서 개별적 존재의 절대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절대적 가치보다는 상대적 가치로 세상을 바라본다.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관계주의 또는 공동체주의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저자 주.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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