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세월 존재 하나하나의 절대적 가치보다 공동체 속의 관계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과 가치관은 고스란히 문화를 형성하였고, 한 사회의 문화를 보면 그 문화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삶에서 제일 중요한 식의주에서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만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수천 년에 걸쳐 곰삭은 우리네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표 음식이 비빔밥이다. 통영에서는 너물밥이 그렇다. 개별성과 공동체성이 살아있다. 청각, 톳, 미역 등 제철에 나는 싱싱한 해초와 나물, 두부 하나하나가 맛과 영양과 식감이 살아있어야 하고, 고슬고슬한 밥알도 살아있어야 한다.

따로 먹어도 맛있고, 비벼 먹어도 맛있다. 그래서 나는 따로 먹다가 비벼 먹는다. 너물을 먼저 먹고 뒤에 밥을 먹기도 하고, 너물에 밥을 비벼 먹기도 한다. 당연히 비벼 섞으면 따로 먹을 때 와는 전혀 다른 맛이 느껴진다. 어우러져서 힘을 얻는 공동체성이다. 관계주의다.

계절마다 들어가는 해초와 나물의 종류가 바뀌니 너물밥의 맛은 사시사철 변한다. 엄격한 레시피에 따라 조리해서 언제 먹어도 일정한 맛을 내는 요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나름의 조리법은 있지만, 고정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변화시키는 요리법.

이것이야말로 다도해 음식이 갖춘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열린 듯 닫힌, 닫힌 듯 열린. 끊어진 듯 이어진, 이어진 듯 끊어진 다도해의 품성과 지혜,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하나하나의 맛이 살아있음으로써 바다는 열린 듯 닫혀있고, 섬은 이어진 듯 끊어졌다. 어우러져 독창적인 맛을 냄으로써 바다는 닫힌 듯 열려있고, 섬은 끊어진 듯 이어졌다.

심지어 먹는 사람의 취향과 버릇에 따라서도 너물밥의 맛은 변한다. 마치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의 손놀림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비비는 힘과 속도, 방향, 횟수, 범위에 따라 너물밥의 맛은 바뀐다.

서구에서는 흔히 한국과 일본을 집단주의가 발달한 사회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을 공동체주의 문화로 바라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이 집단에 녹아들어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대아가 소아보다 언제나 상위에 있다. 그래서 조직이 붕괴할 때 자아를 잃고, 자신을 붕괴 시켜 버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직이나 국가가 무너진다고 개인이 같이 무너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맹렬하게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한다.

통영 사람들은 너물밥으로 맛과 영양, 가족애와 인심을 나누고, 다찌와 함께 술을 마시며 우정을 나눈다. 이 속에 다도해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섬과 바다가 무한 변주하는 다도해에서 살아온 통영 사람들은, 공간형과 시간형 음식문화를 '변주'했고, 개별성과 공동체성을 '융합'했다.

한편 다찌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진짜 선진 음식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변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나친 상차림으로 인한 과식과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다. 과식은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만병의 근원이요, 음식쓰레기는 바닷속 먹거리를 고갈시키고, 흥청망청 소비문화를 부추겨 통영다움의 쇠락을 이끈다.

다찌가 차려내는 재료의 신선함과 다양하고 맛깔스런 상차림은 계승하되, 음식의 양은 대폭 줄여야 한다. 깔끔하고 간소한 상차림이 고급문화이다. 질로 겨루지 않고 양으로 겨루면, 바다가 망하고, 식당이 망하고, 통영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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