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풍수는 과연 우리 삶을 결정하는가? 풍수는 믿고 의지할 만한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고, 의식이 삶을 바꾼다. 그러니 공간은 쉽게 우리 삶을 결정한다. 그렇게 믿으며 오랜 세월 우리는 길지(吉地)를 찾아 헤매었다. 생활 터전을 찾아 양택 (陽宅)을 좇았고, 묫자리를 찾아 음택 (陰宅)을 신봉하였다. 지금도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생각하는 집안은 양택이나 음택의 덕택이라고 믿는다. 양택이든 음택이든 본질은 복을 받고자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맹렬히 노력한다. 선택과 노력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풍수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애쓰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자연 속에서 갖가지 생명체와 자연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 삶이니, 자연환경의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유 의지와 자연환경 모두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바람이 거세게 나부낄 때, 전통과 미풍양속, 무형 유산을 가리지 않고 천덕꾸러기 취급하기 일쑤였다. 생활 속 지혜도 미신 취급 당했고, 온고지신은 책 속의 문구일 뿐이었다. 서구 문명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했고, 우리 것은 낡고 비과학적이라며 밀쳐내었다.

그런 풍랑 한 가운데 풍수가 있었다. 정부의 강압적인 퇴출 노력과 국민의 자발적인 갖다 버리기 신풍속도 가운데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것의 하나가 풍수지리였다. 최근에는 주거 환경의 배치나 실내 장식을 풍수로 접근하는 '집안 풍수'도 등장하고 있다. 풍수는 여전히 힘이 세다.

통영의 풍수 이야기를 몇 개 살펴보자. 먼저, 주인산인 여황산이 손님산인 미륵산보다 낮기 때문에, 통영 사람은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가야 성공하고, 통영에서는 도래인들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황산이 174m, 미륵산이 461m이니 주산이 낮아도 한참 낮다.

이 풍수 해석에 딱 맞는 1호 인물로 등장하는 이가 이순신 장군이다. 외가 아산에서 태어나, 본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국을 떠돌다 통영에 진영을 차릴 즈음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었다. 아마도 지금껏 이순신 장군이 가장 존경받는 고장도 통영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언제부터 통영 사람이 타향으로 나가야 성공했던 걸까? 조선시대 이전엔 통영 태생으로 출세한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풍요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지 유학을 떠났던 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렇게 고향 떠난 향인들이 출세한 덕택에 풍수 이야기가 생겨났겠다. 그렇다면 풍수는 출세의 원인이라기 보다 결과에 가깝다.

출세라고 하면 한때 산양 야소골이 명성을 떨쳤다. 십수 년 전 모 방송에서 '출세만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였다. 국회의원, 검사, 변호사, 한의사, 치과의사, 교수, 방송국 PD, 시인, 변리사 등이 골고루 배출된 내력을 두고 풍수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가난했던 부모들의 억척같은 생활력과 성실함, 그리고 열망을 비결로 꼽았다. 잘 나가는 집 자식들을 보며 이집 저집에서 열망이 끓어올랐다. 열망은 풍수보다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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