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동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인 세 사람이 난다는 풍수 얘기가 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한국 문단의 거장 박경리 선생이 명정동 출생이다. 그런데 아직 한 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풍수가가 말한 그 한 명이 이미 태어났을 수도 있고, 장차 태어날 수도 있겠다. 그러니 명정동에 거주하면서 출산과 육아의 꿈을 그리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여인이 날지 안 날지는 모르지만, 두 명의 여인이 났으니 한 명을 더 기대하는 건 인지상정이겠다.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일 수도 있고, 풍수가의 덕담일 수도 있겠다. 통영성 서문 아래 동네인 명정동은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액서원인 충렬사가 있어 기개와 엄숙함, 정갈함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그 영향으로 조선 시대부터 학문하는 인물이 많았다. 언덕 위에는 호주선교사의 집 진명학원이 있어 최신 서양 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세보다는 사람의 영향이 커 보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동네인 데다 물이 귀한 통영에서 마르지 않는 샘 명정샘은 명정동이 길지가 되는데 큰 몫을 했다. 가죽고랑이라 불린 서호천은 생활 수의 역할이 컸다. 그러니 통영의 권력자와 재력가, 학덕이 높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12 공방 장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시인 백석이 사모하던 여인 난이도 이곳 명문가 집안의 여식이었다.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따지는 것이 풍수의 본질이다. 풍수는 애초에 삶을 위한 생활 과학과 지혜에서 출발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전통 마을에서는, 산세와 물과 바람의 흐름을 중요하게 불 수밖에 없었다. 집 자리와 방향은 생활의 쾌적함 뿐만 아니라, 삶의 안위까지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었다. 겨울의 북서풍이 매서운 한반도에서 농사짓고 살기 제일 좋은 자리가 배산임수다. 뒤뜰엔 사철 푸른 나무를 심어 찬 바람을 막고, 앞마당엔 잎 넓은 활엽수를 심어 여름엔 그늘을, 겨울엔 햇살을 모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에 모여 살고, 자연이 제공해주던 생필품을 온오프 유통망을 통해 얻게 되었다. 그러니 풍수의 의미와 역할이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 치면 최적의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 또는 환경영향평가가 신 풍수라고 하겠다.

자연재해 발생 건수와 피해 규모, 대중교통 접근성과 교통 혼잡도,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 일조권과 조망권, 초중고등학교와 의료기관, 폐수나 매연, 악취를 유발하는 시설, 각종 문화시설과 레저시설, 산책 공간, 재래시장과 마트, 아파트의 경우 층간소음, 이런 것들이 현대 풍수의 주요 내용이 될 것이다.

주거 환경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물리적인 조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무척 중요하다. 마을 공동체의 화합과 주민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은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구감소가 심각한 요즘, 텃세가 심한 동네는 땅값과 상관없이 흉지(凶地)다. 주민자치회나 아파트 입주대표자회의 운영의 건전성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지자체는 시민 행복을 위해 적극 행정을 펼치는지, 행정이 투명하고 친절한지, 재정자립도는 건전한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연령별, 성별 인구 구성 비율과 함께 연간 신생아 수도 중요하다. 제아무리 출세한 사람이 많은 지역이라도,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뚝 끊긴 곳이라면 길지라고 보긴 어렵다. 취업율과 범죄율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 풍수의 핵심 요소다.

풍수는 뭐니 뭐니 해도,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제일 중요하다. 풍수를 결정하는 건 지형과 지세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길지요, 사람이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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