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지역언론 안착에 큰 어른으로 남아

안타깝고 슬프고 슬프다.

나이가 들면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게 당연함에도 안타까운 면이 남는 것은 왤까?

올 설날 김관욱 한산신문 전사장님 댁을 방문할 때도 힘들어 하긴 해도 다시 건강해 질 것이라고 믿었다. 온몸이 아프긴 해도 시내 나들이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오히려 남을 걱정하는 특유의 말투에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수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 향년 82세 김관욱. 영면을 빕니다.

故 김관욱 사장(한산신문)은 명정동에서 태어나 충렬초등학교, 통영중학교, 통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문리학과를 다닐 당시 문리과대학 학생회장선거에 나서 압도적인 표로 당선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산잡지인 현대해양에 잠시 적을 둔적이 있으나 줄 곳 고향 통영을 떠나지 않고 지역을 지켰다. 체육분야에서는 충무시축구협회장을 맡아 통영축구의 중흥에 기여하기도 왔다. 각종 봉사단체 등 대외적인 사회활동도 활발했다. 

김관욱 사장을 처음으로 만난 건 1990년 2월초로 기억한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언론사시험을 쫓아다닐 때 우연한 인연으로 한산신문에 입사하면서 부터이다. 당시에는 지역언론의 태동시기이기에 모두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김관욱 한산신문 초대사장은 통영 지역에 풀뿌리지역신문을 뿌리내리게 한 큰 업적을 남겼다. 시민주로 구성된 한산신문이 초대사장으로 김관욱씨를 초빙한 것은 통영지역의 정치, 경제, 체육 등 많은 분야에 힘이 있고 덕망이 있는 분을 모시기 위함이었다. 

김관욱 사장은 명정동에서 초대 충무시장이신 김기섭님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났다. 당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호탕하고 스케일이 크신 분이었다. 명정동에서 도가집(거북선 소주 발간)을 운영하던 곳이어서 먹을거리는 늘 풍부했으며 없는 이들이 이곳에 가면 언제나 배불러 나오곤 하는 곳으로 명정동의 터줏대감이었다. 과거 이중섭 화가가 이곳에 찾아가서 수시로 부탁했다는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300년된 집안에는 늘 손님들이 북적였으며, 술을 좋아해 집에 많은 술을 담궈 나누기도 했다. 통영에서 고인의 술을 얻어먹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자신의 집에 사랑방 역할을 자처하고 통영의 많은 의견수렴 창구로서 지역어른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김관욱 사장은 지역 정가에서도 늘 야당으로 활동해왔다. 

부친인 김기섭 초대통영시장이 7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선거무효소송에서 이겨 임기 7개월을 남기고 재선거가 실시됐으나 정작 김기섭 후보는 출마를 못하게 하는 바람에 울분이 일었다. 이후 6.8부정선거가 만연하자 통영에서 김동욱, 김관욱 두 형제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횃불데모를 주도해 경찰에 투옥되기도 했다.   

또 형인 김동욱 전의원(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이 12.12 신군부의 집권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후 정치규제법으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자 자신(김관욱)이 직접 나서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권당 후보로 출마해 지역민심을 대변하기도 했다.

정치하는 집안의 책무에서인지 김관욱 사장은 1995년 지방선거에 명정동 시의원으로 출마해 압도적인 표로 당선돼 통영시의회에 입성하게 된다. 초선임에도 통영시의회 제2대의장에 당선돼 시의회를 이끌면서 부활된 지방자치시대를 개척해 나가게 된다.    

김관욱 사장은 이후에도 1990년부터 한산신문 대표이사로 풀뿌리지역언론의 정착화에 주력했다. 열악한 재정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재를 보테기도 했으며, 지역언론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민주주의 실현에 앞장서 왔다.

또한 지방화시대에 생활환경 보존문제, 사회문제 교육 보건문제, 문예진흥과 건전한 여론형성  지역사회의 파수꾼, 지역민의 대변자 노릇에 충실했으며, 사랑방의 훈훈하고 우물가의 방담처럼 항상 새로운 지역의 소식지임을 자처하면서, 글방의 호령처럼 준엄하기도 한 지역의 대변지로 한산신문을 키워왔다. 

언제나 호탕하고 멀리 내다보는 스타일이었으며, 통영의 발전을 위해 대외관계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갈등을 조정하고 정치를 통해 통영의 발전을 이끌어 오신분이다. 특히 정치 분석면에서는 타의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명석하며 지역의 탄탄한 인맥으로 민심을 이끌어가는 대인배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앞에서 나서기보다는 늘 뒤에서 후원하고 응원하면서 지역의 어른으로, 조력자로 남기를 원했다. 

누구보다 통영을 사랑하고 아끼며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해 풀뿌리 지역언론을 정착시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심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인정받는 부분이다. 

이제는 모든 짐 내려놓고 편안히 영면하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2022년 4월 13일.
한산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성병원(통영RCE 세자트라숲 사무국장)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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