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0년 전쯤 스리랑카는 한반도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인도 아대륙과 인도차이나반도, 말레이시아를 지나 한반도까지 이어진 순다랜드를 따라 지난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순다랜드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발걸음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험난한 항해술을 통해 미지를 향한 인간들의 오랜 꿈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신라에서 스리랑카는 사자국(獅子國)으로 불리었다. 지금은 사라진 사자가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동물일 수 있었던 것은 순다랜드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이었다. 운이 좋아 스리랑카를 두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한때 수도였던 시기리야 왕성에서 거대한 사자상을 만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신라인들에게 '불국토(佛國土)'의 전형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붓다의 치아 사리가 모셔진 불치사(佛齒寺, Temple of the Tooth)가 있고,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 씨앗에서 돋아난 새싹 중 하나를 옮겨심은 보리수가 2,000년을 지키고 있다. 보리수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상징하는데,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바로 그 보리수의 아들이다. 현재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는 스리랑카에 있는 보리수의 자손을 다시 옮겨심은 것이다. 스리랑카는 지난 2,000년 동안 상좌부 불교 또는 남방불교의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최근 스리랑카는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 수입이 급감한 데다 주요 찻잎 수출 대상국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수출 길이 막힌 것이다. 게다가 이 두 나라로부터 원유를 수입해왔던 스리랑카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부도와 함께 생필품 보급마저 차질을 빚어 국민들의 일상이 무너지는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스리랑카가 전쟁 당사국보다 먼저 국가부도 사태를 선언한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형제 사이인 대통령과 총리의 집안이 국가 고위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권력 독점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아울러 차와 쌀을 중심으로 한 농업과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관광산업 외에 제조업 기반이 지나치게 취약한 경제 구조가 함께 내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은 높지만, 농기계와 비료 등이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농업 생산성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통영의 식량 자급률은 얼마나 될까? 총 자급률은 152%로 필요량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자급률 1,200%에 이르는 수산물을 제외하면 실제 자급률은 매우 낮다. 채소류가 62%로 그나마 높은 편이고, 과실류는 15% 정도이고, 가장 중요한 식량작물은 30%밖에 되지 않는다. 0.5ha 미만의 중소농가 비중이 82.7%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10ha 이상의 대농은 0.1%로 매우 낮다. 농업 인구는 지속해서 감소할 뿐만 아니라 고령화되고 있고, 휴경지는 32%에 이르고 있다. 한 마디로 통영의 농업은 갈수록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 수급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식량 가격 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주기적인 팬데믹의 습격과 기후 위기의 파고가 드세지면서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는 국방 안보 못지않게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시대다.

1만 년 전 스리랑카에서 한반도 남쪽으로 걸어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통영 농업의 미래를 떠올려 본다. 관광산업도 좋고, 조선산업도 좋지만, 먹거리를 확보하는 농수축산업은 자연재난, 전쟁, 질병의 만연 등 어떤 조건에서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가족의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 주. 사진은 스리랑카의 옛 수도였던 시기리야 왕성의 사자상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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