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은 통영 향인들이 잊지 못하는 명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내려보는 전망이 드높고 품이 아늑하여 대한민국 명산에서 빠지지 않는다. 긴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는 전망, 품세와 함께 미륵산이 명산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다.

미륵산 동남쪽 언덕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미래사는 이야기의 보고이자 힐링 명소다. 미륵도 자체가 미래의 부처 미륵을 기다리는 섬이자, 미륵 부처가 세 번의 법회(三會)를 열어 일체중생을 구원하는(度人) 곳이 미래사이다(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제212화, 미래사의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 2019년 6월).

미래사 주차장에서 내리면 왼편에 미래사를 창건하고 일군 고승들의 부도들이 있다. 부도전에서 미래사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작고 예쁜 연못을 건너야 하는데, 불영담(佛影潭)과 자항교 (慈航橋)다. 불영담은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는 뜻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연못가에 작은 초막을 설치하고 작은 돌부처를 모셨다. 보통의 절에서는 일주문을 들어서며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는데, 이곳에서는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을 지나며 번뇌 망상을 내려놓게 된다.

연못을 들여다보면 잉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과 함께 자라가 살고 있다. 연못 가운데 바위에 올라앉아 햇볕을 쬐는 모습이 마치 명상하는 수도승 같다. 물가로 내려서니 법담을 해주려는 듯 자라 한 마리가 헤엄쳐 다가온다. 자라는 주둥이의 무는 힘이 세서, 한 번 물린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과 공포를 경험한다는 얘기가 떠올라 선뜻 손을 내밀지는 못하고, 합장으로 마주 인사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겠다.

자라는 방생과 별주부전을 통해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동물이다. 별주부전은 토끼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별(鼈)은 자라를 뜻하는 한자 말이고, 주부(主簿)는 문서를 관리하던 종6품 관직 이름이었다. 즉, 별주부란 주부 벼슬에 있는 자라란 뜻이다.

이야기의 원형은 삼국사기에 실려 전해지는 고대 설화 구토지설(龜兎之說)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래는 인도에서 유래하였으며, 불교의 전파와 함께 전래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 설화에서는 악어와 원숭이가 등장하는데, 중국에서는 자라와 원숭이로 변하였다. 다시 한국으로 전래하면서 자라와 토끼로 변하였다. 고대의 이야기는 여러 종류가 있기 마련이데, 인도에서는 민물 돌고래, 태국과 스리랑카에서는 악어가 자라 대신 등장하기도 한다.

토끼의 간을 놓고 옥신각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계략을 겨루는 자라와 토끼의 이야기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티키타카의 전형으로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 세다. 기나긴 세월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별주부타령 또는 토끼타령으로도 불리는 수궁가를 청년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협연으로 재해석하였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이 '범 내려온다'를 홍보 영상으로 만든 '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가 국내외에서 동시에 대박을 터뜨리며 새로운 한류의 흐름을 예고했다.

"그루브와 흥이 하나가 되고, 랩과 타령의 경계가 무너지며,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사라지는, 국적을 초월한 본질을 제시한다." 평론가의 이 표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윤이상 선생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양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일구어낸 윤이상 선생을 가진 통영은, K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자산을 가진 것이 능사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보고 용의 등에 올라탈 줄 알아야 한다. 자랑과 추모, 기념과 홍보를 넘어, 끊임없는 창조의 원천으로 삼을 때 통영은 모두가 꿈꾸는 진짜 명품 도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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