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이순신 장군 때 시작된 조선 수군 총사령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시작된 도시라는 걸 이젠 다들 안다. 통영이란 지명이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나왔는데, 정작 통영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이라 부른다. ㅇ 하나가 바다에 빠져 그토록 찬란한 윤슬이 되었나 보다.

1593년 7월 14일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진영을 설치하고 한 달 뒤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으면서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이순신 통제사가 파직 하옥되고, 2대 원균 통제사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며 통제영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후 한동안 기지 없이 떠돌아다니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지금의 통영 땅에 통제영을 건립한 것이 1604년이다.

그러면 그 이전의 통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면 반드시 그 이전의 역사가 있기 마련이다. 고성현의 작은 어촌 마을인 두룡포라는 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립되면서 지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조선 최고, 최대 국방 도시가 되었다다.

삼도수군통제영이 건립되기 전 통영은 '토끼와 여우가 뛰놀던' 곳이었다. "한낱 소금기가 많아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바닷가 항구로, 여우와 토끼가 뛰놀던 잡초 우거진 언덕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의 건립 배경을 기록하고 이경준 통제사의 공덕을 기리고자 세운 <두룡포기사비> 비문의 한 구절이다. 지금도 통제영 마당에 우뚝서서 상전벽해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2023년 올해는 토끼해이다. 두룡포기사비에서 전한 토끼 얘기를 해보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뛰놀며 스리슬쩍 서로를 쳐다보던 토끼와 여우가 어느 날 합방을 하였다. 어떻게 둘이 만났는지,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는 본 사람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아홉 달이 지나고, 토끼와 여우는 예쁘디 예쁜 아기를 낳았다. 아기 이름은 토끼와 여우의 이름을 따서 '토영'이라 불렀다. 토끼와 여우가 어떻게 자식을 낳느냐고? 토영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 이순신 장군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대첩들을 기적 같이 일구지 않았는가?

토끼와 여우의 사랑은 21세기가 꿈꾸는 창의성과 지속가능성의 선구적 모델이다. 약육강식을 넘어 생명, 평화, 화합을 상징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만 8천 명 넘는 왜군을 몰살한 것도 바로 백성의 생명을 살리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였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을 24전 24승의 장수로 기억하는 건 장군을 폄훼하는 것이다. 비대칭적인 조건에서 큰 승리를 일군 장수는 많다. 적군의 목숨을 대량으로 앗아간 장수는 세상에 부지기수다. 생명과 평화를 위해 무장으로서 할 수 있는 극강의 승리를 일군 이가 장군이다.

토끼와 여우가 사랑할 수 있다면, 전쟁과 폭력, 기후위기, 자원 고갈, 감염병 등으로 암울한 인류의 미래에 큰 희망이 될 것이다. 이순신공원에 우뚝선 장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토끼와 여우가 합방한 게 1,602년이었고, '토영이'가 태어난 해는 1,603년 계묘년이다. 토끼해였다. 토끼가 토끼해에 태어났으니 길운을 타고났다. 그래서 '토영이'가 태어난 지 한 돌이 되는 1604년에 통제영이 건립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2023년 계묘년은 검은 토끼해다. 언젠부턴가 12간지 띠를 색깔로 구분하는 풍습이 생겼다. 10간을 5가지 색으로 구분하는데, 임과 계는 검정색이다.

검은 색이라 하여 혹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검정은 지혜와 통합을 상징한다. 그러니 2023년 토끼해에는 지혜와 토끼의 부지런함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늘 행복하기 바란다.

저자 주.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쌍토끼연'입니다. 방패연의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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