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산다는 건 묵묵히 견뎌 내는 것
엄동 딛고 버선발로 뛰어 오셨군요
그대 맘껏 누리소서
대 구속 뒤의 대 자유를
저, 은백색 해탈의 웃음

※시작(詩作)노트

[문향천리(聞香千里) 매화]

만물이 겨울잠을 깨고 기지개켜는 초봄의 산하에 맨 먼저 매화나무의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있다. 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위에 청아한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의 문턱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가져다주며 힘찬 생명력을 재생시키는 기대를 가지게 해준다.

특히 겨울동안 마치 죽은 용의 형상과 같은 고독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은 지치고 쇠약해진 봄에서 다시 되살아나는 회춘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연하장에는 이 매화가 어김없이 등장하나 보다.

매화는 오랜 추위와 기다림 끝에 핀 꽃이건만 무욕의 모습이면서도 절제와 함축미를 갖춘 달관의 얼굴이다. 매화의 고자(古字)는 모(某)인데 매(梅)의 본자이다. 매는 어머니(母)가 되는 것을 알리는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임신을 한 여자들은 신맛이 있는 과일을 찾게 되는데 매실은 신맛이 강해서 여자들이 매실을 찾으면 임신한 것이므로 매실 열매가 출산의 전조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매화는 온갖 꽃이 피기도 전에 맨 먼저 피어나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이른 봄, 맨 먼저 꽃을 피운다 하여 꽃의 맏형 ‘화형(花兄)’, 꽃의 우두머리 화괴(花魁)라 부르기도 한다. 매화는 힘든 세상 속에서 희망의 싹을, 마음의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꽃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사랑의 체온과 향기를 불어 넣어 주는 꽃이다.

우리가 산다는 건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길, 그 길이 비록 험난해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을 ‘살려고 하는 의지의 동물’이라고 일컬었다지, 그러나 이러한 의지와 극복의 힘을 갖고 있어도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희망의 싹, 희망의 봄을 알려주는 매화는 더욱 경외스럽게 비쳐지나 보다.

매화는 그 아름다운 자태와 비견할 또 하나의 매력은 그 향기에 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 가운데는 그 향기를 기린 것이 수없이 많다. 이 세상 어느 꽃향기가 인고를 딛고 눈 속에 서서 피는 매화꽃 향기에 비하랴. 매화의 향기는 담원성이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으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듯 꿈결처럼 풍겨오는 것이 매화의 향기이다. 선인들은 매화의 향기를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정적 속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분위기에서라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매화는 옛부터 사군자 중 첫 번째로 선비로 의인화하여 동양화의 한 편에 자주 등장한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이라는 말은 매화는 성품이 고상하여 일생을 추위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이라는 말은 겨울에 억센 추위를 견뎌야 이듬해 피운 향이 훨씬 진하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안락을 위해 향을 팔아 몸의 이로움을 꾀하지 않는다는 오롯한 선비정신을 담고 있다. 또한 풍류객들은 매화꽃 향기는 코로 맡는 게 아니라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고 말한다. 그런 여유로 매화의 향기가 멀리까지 풍기는 것을 문향천리(聞香千里)라 했다.

게다가 여기에 매화송이 하나 뚝 따서 술잔이나 찻잔에 띄워 놓으면 그 향과 어울리는 알코올과 차의 맛이란 익히 계절에 관계없이 평화로움과 아늑한 정취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매화를 닮은 사람이 그리운 시절을 살고 있다. 인고의 계절에 그윽한 향기를 품고 피어나는 매화 같은 사람, 매화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또 어떤 향기로 남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우리의 삶과 인생은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매화처럼 피어나야 함을 보여준다.

흐르는 게 세월의 강물만은 아닌 것 같다. 매화의 향기가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인생도 흘러가고 있다.“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매화타령 한 곡조 걸쭉하게 뽑고 싶어지는 희망의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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