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 연인들은 들뜨고, 가게 주인들은 더 설렜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건 19세기 영국과 20세기 일본 업체들이 퍼뜨린 유행이라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고, 무분별하게 유행을 좇는 세태는 차츰 줄어드는 분위기다.

반대로 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3.1 절을 보름 앞둔 시점에 들뜸보다 차분함 곁으로 다가서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헌법 전문의 내용이다. 대한민국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사상, 이념, 종교, 지역, 학벌 등 어떤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뿌리는 3.1운동에 있고, 1919년 3월 1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새 출발일이다.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시들어가던 독립의 기운이 3.1운동을 기점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대한민국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

통영도 마찬가지다.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 역사의 근간이지만, 통영의 근현대사는 항일 독립투쟁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는 1907년이다. 한일병탄 이전 구한말부터 세력을 넓히며 통영 경제를 장악하던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강구안 매립 공사 과정에서 통영 사람을 차별, 멸시하던 일본인들이 통영 진위대 하사를 구타했고, 이에 격분한 민심이 폭발하여 무력투쟁이 일어났다. 일본인에게는 쌀도 팔지 않았고, 일본인들은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이후 1919년 4월 독립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항일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고, 해방 전까지 사회운동, 학생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통영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항일 독립투쟁이 드세었고 시기도 빨랐다.

이 점에서 통영과 미국 보스턴은 닮았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보스턴 항구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 미국인들이 즐겨 마시던 차에 지나치게 높은 세금을 매기자 분노한 시민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42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국 정부가 이를 무력 진압하였고, 보스턴은 미국 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일명 보스턴 차 사건이다.

보스턴은 식민지인 학살 사건으로 인해 반영 감정이 매우 강했던 곳이다. 차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 항만 노동자들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눈덩이를 영국 병사에게 던졌는데, 눈싸움을 총싸움으로 맞서 네 명이 사망하였다.

2019년부터 통영시는 미발굴 독립유공자들을 전수조사하여 176명을 발굴하였다. 이 중 81명의 서훈을 보훈처에 신청하였고, 15명이 지난해 보훈처로부터 국가 독립 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이로써 통영시 출신 독립유공자는 모두 105명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강구안 사건 116주년이자, 3.1운동 104주년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통영의 독립운동사를 되짚어보며, 자주 민주 대한민국을 꿈꿨던 그분들의 의기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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