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봄날

강구안 선창가 함께 걷는 청마와 정운
베레모 눌러 쓴 중섭은 소달구지 몰고
대여랑 초정 돌멍게 껍질 술잔
부딪히며 권커니 자커니에 코발트 빛
바다위로 봄날은 익어간다

*청마(靑馬):유치환, 정운(丁芸):이영도, 대여(大餘):김춘수, 초정:김상옥

※시작(詩作)노트

[울퉁불퉁 멍게]

멍게하면 쌉쌀ㆍ달콤ㆍ항긋한 맛의 진수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통영 중앙시장, 서호시장 어판장엔 멍게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횟집마다 봄철 미식가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멍게 껍질을 까는 통영 인평동 천대마을 등의 박신장에서 여인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한 걸 보면 멍게철이 오기는 온 모양이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성장하면서 파인애플을 닮아 '바다의 파인애플'이란 애칭도 얻고 있다. 피낭의 상단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공(入水孔)과 출수공(出水孔)이 있어 물을 뿜어낸다.

원래 우렁쉥이가 표준어이고 멍게는 사투리이다가 한글 표기법 개정때 표준말로 인정받았다. 아니 요즘은 오히려 멍게가 더 통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멍게가 껍질에 싸여 물을 쏘는 모습에서 우멍거지라고 하였는데, 우멍거지는 남성기가 포경(包莖)일 때의 순수 우리말로써 차마 이 말을 쓰기가 민망해서인지 가운데 두 자만 추려서 사용한 선조들의 해학과 재치가 돋보인다.

'멍거'에서 편의상 '멍게'로 바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멍게를 대한다면 한층 더 정겨웁게 다가오지 않을까? 멍게의 항긋한 뒷맛처럼 말이다.

멍게는 언제나 필수불가결한 미량의 금속 바나듐 성분이 들어있다. 이 바나듐은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주며 당뇨병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스테미너 증진에도 한 몫을 한다하니 이 어찌 기특하지 않겠는가. 또한 멍게에 함유된 플라스말로겐이란 성분은 노화예방 및 치매 예방효과도 있다고 하니 더욱 귀히 여겨진다.

물에서 딴 뒤 몇시간 지나면 옥타놀과 신티아놀이라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독특한 단 맛도 지닌다. 그리고 화장품의 원료로도 쓰이는 콘드로이틴황산을 추출하여 피부미용은 물론 동맥경화 억제, 뼈 형성 작용, 세균감염 억제 등에 활용되기도 한다. 여성들이여 부디 많이 드실지어다. 양(陽)과 음(陰)의 기운이 합쳐지는 형국이니 말이다.

또한 멍게는 해삼, 해파리와 함께 3대 저 칼로리 해산물에 속한다. 게다가 해삼, 해파리와는 달리 다량의 글리코겐이 함유되어 있고, 아미노산의 균형이 뛰어나다고 하니 단연 영양이나 그 기능면에서 우수한 식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멍게는 만두멍게, 딸기만두멍게, 흰덩이멍게, 거북등안장멍게, 유령멍게, 벼개멍게 등의 종류가 다양하다. 회나 비빔밥 재료로 쓰이는 종은 멍게 또는 우렁쉥이라고 부르는 종이다. 우리가 흔히 돌멍게라 부르는 것은 거북등안장멍게이다.

이것은 멍게와는 달리 껍질이 돌처럼 매우 단단하다고 해서 돌멍게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때론 애주가 사이에선 돌멍게의 속은 먹고 껍질은 간이 소주잔으로 이용하는 멋을 즐기기도 한다.

돌멍게는 맛과 향기가 멍게보다 뒤떨어지지 않아 인기가 많은 반면 자연산 밖에 없어 그 양이 많지 않은지라 미식가들은 더욱 돌멍게를 찾는 모양이다. 한편으로 멍게는 주로 초장에 찍어 회로 먹지만 멍게비빔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미이다. 잘 앙념된 왜간장에 하얀 이밥과 함께 멍게 살점을 쓱쓱 버무려 비벼 먹는 그 맛 역시 독특하다.

흔히 바다를 자연의 보고라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식량 분야를 말하였지만 요즘은 해양 바이오 에너지에 관한 관심의 비중이 더 커진 것 같다. 최근 사이언스 데일리에 노르웨의의 한 연구팀이 해양생물인 멍게를 바이오 연료로 활용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멍게가 앞으로 미래의 선진바이오 에너지 자원

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날도 머지 않을 듯 싶다. 앞으로 에너지 위기를 타게 할 한 방책이 멍게로부터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멍게는 버릴게 없는 귀한 수산 자원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졸시 <멍게님> 시 한 수를 읊어본다. "망칙하게 볼라치면/ 이팔청춘의 젖꼭지요 우멍거지라/ 고개들어 올려보면 설악 봉정암 둘레산/ 성스런 공룡능선 봉우리들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살이에/ 눈 귀 코 입 다 닫아 걸고/ 마음먹고 작정한/ 바다 속 백년 수행자인가/ 비우고 다 비우다가/ 기어코/ 가죽 껍데기 한 자락만 걸친/ 적토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환생했나/ 이제 그 속비운 내장마져/ 입 맛 쩍쩍 다시는 중생들에게/ 훌훌 던져주고/ 마감하는 멍게님의 생애/ 거룩한지고"

지금 통영의 산하 곳곳에는 봄꽃들이 서둘러 꽃피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아니 매화를 선두로 벌써 시작되었다. 코발트 빛 통영 봄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펄떡거리는 해산물들이 있어 입과 눈이 더욱 즐겁다. 그윽한 금관악기 뱃고동 소리 한자락과 더불어 선창가 또는 횟집 난전에 앉아 정담을 나눌 정인(情人)과 마주 앉아서, 잘 삭은 초고추장에 멍게 한 입 가득 베어 물어 보시라. 게다가 얼마 후면 벚꽃도 개화 할 것인데 봉수골 벚꽃길 벚꽃나무 아래 앉아 맥주잔ㆍ소주잔ㆍ막걸리 잔을 들어, 그 속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하양 분홍 벚꽃잎 후후 불며 마셔보는 낭만 한 번 누려본다면 그 더욱 절창이 될지어다.

시인 이동순은 "소주와 멍게는 서로 부둥켜 안고 블루스를 춘다"고 했다.

그 발칙한 낭만의 힘으로 부터 삶의 의욕을 충전할 지어다. 찬란한 슬픔의 봄, 빛나는 꿈의 계절,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이 서둘러 달려오고 있다. 아니 어쩜 그 멍게 향과 더불어 통영의 봄은 벌써 불그스레 익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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