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갈도를 간다. 갈도는 먼 섬이다. 통영항에서 1시간 30분 거리다. 갈도는 작은 섬이다. 당연히 여객선은 없다. 한 가구 한 사람이 거주한다. 배를 대절하지 않는 이상 갈 수가 없다. 통영의 동남쪽 끝 섬이 큰갈매기 섬 홍도라면, 통영의 서남쪽 끝 섬이 갈도다. 갈도 너머는 남해와 여수 해역으로 들어간다.

갈도에서 서남쪽으로 바라보면 바위섬 세존도가 보인다. 행정구역상 남해군에 속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바위섬이다. 오늘 행선지를 갈도와 세존도까지 잡았는데, 오후에는 파도가 세어져서 세존도 섬행은 다음으로 남겨야만 했다.

먼 섬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일수록 도전 의식을 갖는 인간이 가진 특징이다. 그러니 먼 섬에 가는 건 매우 특별한 일이 된다. 그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설렐 수밖에 없다.

마음이 분주하다.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냄새 맡을까? 갈도와 세존도는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준비물로 뭘 챙겨가야 하나? 두 섬 다 무인도 또는 반 무인도이니 당연히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왠지 이곳에 가면 인어공주가 갖가지 해산물로 맛있는 밥상을 차려줄 것만 같다.

아니다. 지혜로운 공주가 제 나라 백성을 잡아다 먹거리로 바치지는 않을 것이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내 욕심이 순간 착각을 일으켰을 뿐이다. 부둣가에 도착하니 섬행 길벗 한 분이 천혜향을 나눠준다. 귀함 받는 이가 공주가 아니라 나누는 이가 공주다. 뭍에 사는 인어공주 덕에 출발이 더 즐겁다.

갈도는 쉬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거친 파도, 짙은 구름, 갈도의 첫인상은 회색빛이다. 욕지 너머는 역시 바깥 바다다. 안 바다와 다른 세상이다. 거칠고 거침없다. 8톤 배가 거칠게 흔들린다. 생각이 경계 밖으로 넘나든다. 인간계와 비 인간계를 오간다. 그 경계에 사는 갈도 주민 한 명은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사람(人)이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을 때 인간(人間)이 되는데, 홀로 사는 사람은 그야말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걸쳐있다. 배를 타고 육지로 오가는 뱃길, 무선 인터넷과 전화망이 그나마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어주는 탯줄이다. 이것이 끊어지면 인간이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돌아간다.

갈도는 통영이 아닌 남해군 생활권이다. 욕지도가 그나마 가까운 큰 섬이나 그도 섬이라 차라리 남해군이 수월하다. 사량도 곁 수우도가 삼천포 생활권이요, 매물도가 거제 생활권인 것과 비슷하다.

욕지도 뒤쪽으로 쑤욱 빠져나오니 갈도가 점점 가까워진다. 생각만큼 갈도는 작지 않았다. 해수면에서 108미터 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꽤 발품을 팔게 할만하다.

파도가 닦아대는 깎아지른 바위 위에 겨울 풀이 자라고 그 위에 상록수 짙은 잎들이 무성하다. 동백이다. 외진 섬을 바위섬이 아닌 숲이 있는 섬으로 만드는 건 대부분 동백이다. 동백은 다도해의 생명수다.

거센 바람에 동백나무가 가시나무가 되어버렸다. 바람이 드세건 말건 동백은 꽃을 피운다. 조건이 열악할수록 더 열심히 꽃을 피우는 건 생명이 가진 위대함이다. 무생물이 갖지 못한 능동성이다.

동백을 한 송이 따서 꽁무니에 입을 대고 꿀을 빨아 먹어본다. 붉은 꽃이 온 섬을 뒤덮어 꽃을 따는 미안함이 덜하다. 살아있는 꽃을 함부로 따는 건 차마 못할 일이다. 사루비아 붉은 꽃에서 꿀을 빨아먹던 추억이 새롭다.

그런데 다르다. 단맛이 살짝 나는 사루비아와 달리 동백꽃 송이가 선물한 건 꿀물이다. 입안 가득 단내 향이 출렁인다. 상상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독특한 경험이다. 동박새가 즐기는 꿀맛이 이 맛이었구나. 육지에서 맛보지 못한 동백의 꿀맛을 갈도에서 만났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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