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

길바닥에 휘갈겨 쓰여진
절명시 한 줄에
가슴이 철렁
행여나 내 사랑도
아니지 설마

 

[시작(詩作)노트]

찰나의 미학을 보여주는 '벚꽃'

해마다 4월 이맘 대 쯤 어느 시인이 ‘웃음을 잃지 않는 분홍빛 이마’ 라고 표현한 벚꽃을 주제로 펼치는 향연이 전국적으로 벌어진다. 벚꽃처럼 눈부신 꽃도 없을 듯싶다. 일제히 함께 피어나 꽃수레를 이루고 온 세상을 환상의 흰 구름으로 덮어 버린다. 그 어떤 꽃이 이 세상을 눈 온 날 아침처럼 하얗게 만들어 버릴 수 있을까?

벚꽃이 일시에 피어 절정을 이룰 때는 태양아래서도 그 화려함을 자랑하기가 모자라 밤거리 마저도 술렁인다. 어둠 속 불빛에 비춰보는 벚꽃은 더욱 환상적이다. 꽃은 피는 듯 하다 봄비나 바람결에 함박눈이 내리듯 꽃잎은 시들지 않고 무참하게 흩날려 짧은 생을 마무리 한다. 산화(散花)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릴 듯하다. 꽃다운 나이에 전쟁에서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산화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꽃비가 아름답게 내리면 아름다운 길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낙화한 꽃잎들이 이루는 꽃길 역시 아름답다. 벚나무는 꽃이 피어 있는 것도 좋지만 꽃이 지는 것을 보는 것도 더할 수 없이 좋다. 수천 수만 마리의 나비가 한꺼번에 나무에서 날아 내리는 듯 불과 며칠만의 짧은 기간에 몽땅 진다.

이렇게 봄꽃 중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거부감이 도사리기도 하는 것은 일재 식민지 시대의 잔재 때문이리라. 그러나 일본인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왕벚나무는 그 자생지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로 밝혀져 있다. 한국이 고향이다. 즉 우리의 나무이다. 그런 연유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일본은 법률로 나라꽃으로 정한 적이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왕실의 상징은 가을에 피는 국화(菊花)문양이며, 일본의 여권 표지도 이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실 벚나무는 지금처럼 꽃구경에 넋을 빼앗기는 ‘꽃놀이 나무’가 아니었다. 껍질을 벗겨 군수 물자로 이용하는 무기산업의 첨병이었다. 활에 감아 손을 아프지 않게 하는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 임금은 벚나무 심기를 장려했다고 한다. 벚나무는 종류도 무척 많아서 왕벚나무를 비롯하여 산벚나무, 개벚나무, 수양벚나무, 섬벚나무, 올벚나무, 털벚나무 등이 있으나 구별하기 어려운 까닭에 많은 종류를 통틀어 벚나무라 부른다.

벚꽃은 꽃차로 마셔도 좋다. 벚꽃의 색과 향기, 모양을 그대로 담아 찻잔에서 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팔만대장경에 사용된 나무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산벚나무라는 사실을 간과 할 수 없다.

일본 영화 ‘사월이야기’ 에서의 압권은 역시 비처럼 쏟아지는 벚꽃이다. 또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에서도 눈처럼 휘날리는 벚꽃아래에서 하이쿠 한 귀절같은 ‘퍼펙트’외치며 죽어가는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이런 벚꽃엔 비장미가 곁들여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나 보다.

“화다닥 일시에 일어서서/화들짝 한꺼번에 지고 마는/그 짧은 생애가 서러워/눈시울 붉힌다/석별을 아쉬워하며 떨리는 그 입술/차라리 보이지를 마알 것을” (졸시 ‘벚꽃’).

한마디로 벚꽃은 찰나의 미학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미술가이며 음악가이며 연극인이며 철학자의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통영에서는 ‘봉숫골 벚꽃길 꽃나들이’ 축제도 있다.

벚나무 그늘에 앉아 구수한 향의 원두커피 한 잔도 좋고, 걸쭉한 탁배기 한 잔, 또는 맥주잔 그라스에 떨어지는 꽃잎 후후 불며 벚꽃 한 번 관상해 보심은 어떠하실지? 바로 이 꽃의 다른 이름인 피안앵(彼岸櫻)의 의미는 세상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 세계에 도달한다는 뜻임을 한 번 더 새기면서…….

아, 이 강산 낙화유수로구나!

《벚꽃 지는 밤》

/최진태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고
봄밤에 펄펄 꽃눈이
천지에 쏟아져 내려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심사
무언가가 아쉽고
무언가가 서러운 시간
이렇게 또 한번
내 생의 봄날은 떠나가느니
오늘밤 어느 불빛 흐린
목로주점에 앉아
청춘의 한 서러움같은 기억들
술잔 속에 묻어 두리
*김훈

e-mail: gi7171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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