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향이 퍼질 때면 꼭 연락 주세요." 어느 중년 여인이 충렬사 문화해설사에게 남긴 부탁이다. 부부가 함께 서울에서 관광 왔다가 금목서 향에 반했다고 한다. 전화기 너머 여인의 목소리는 애잔했다. 최근 작고한 남편과 함께했던 마지막 향기를 찾아 꼭 다시 충렬사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니 금목서 향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움의 향기. 충렬사 경내에 금목서를 심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까? 여름이 저물 무렵 누군가 그리워지면 충렬사를 찾을 일이다. 내게도 충렬사를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9월 말이면 통영은 금목서 짙은 향기에 갇혀 버린다. 이맘때만 되면 늘 기다려지는 향이다. 길을 가다 금목서 향이 느껴지면 화들짝 주변을 휘돌아 보게 된다. 반가운 이가 곁에 있을 듯하다.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샤넬 No.5이 금목서 향을 이용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금목서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 지역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중부 지방 사람들은 금목서를 아예 모른다. 세계 유명 브랜드 향수를 즐기면서도 정작 오리지널 천연 향을 모른다니 안타깝다. 남도 사람들은 이런 자랑 정도는 하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쯤 없어도 전혀 부럽지 않다.

금목서는 은목서와 더불어 목서의 종류인데, 둘 다 향이 강하다. 금목서의 황금색 꽃이 지고 나면 뒤이어 은목서에서 하얀색 꽃이 핀다. 금목서는 만리향, 은목서는 천리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향이 강해서 만 리를 가고, 천 리를 간다는 것인데, 향에 대한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금목서는 잎 가장자리가 미끈하고, 은목서는 톱니 가시가 있어 구분하기 쉽다.

충렬사 경내에도 은목서가 여럿 있지만, 줄지어선 은목서를 만나려면 착량묘 아래 해저터널 입구로 가면 된다. 일제강점기 1932년 해저터널을 건립하고서 심었을 것이다. 무전동 세무서 앞에 가면 110년 된 은목서가 있다. 출입구 좌·우측에 은목서와 금목서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좌측의 은목서는 수령 110년의 원목이라는 간판이 있고, 오른쪽 금목서는 수령 80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금목서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충렬사로 가야 한다. 홍살문과 정문을 지나 강한루 아래에 이르면 벌써 금목서 향에 취한다. 영모문으로도 불리는 강한루 좌·우측에서 짙은 향을 내뿜는다. 수령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충렬사 경내에는 금목서가 몇 그루나 있을까? 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세어보니 모두 9그루다. 강한루 좌·우측에 2그루, 기념관 앞에 1그루, 강한루와 외삼문 사이에 4그루, 마지막으로 정당 좌우에 2그루가 있다. 대체로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수령이 오래되었다.

금목서는 성장 속도가 매우 느려서 수령이 100년을 훌쩍 넘어도 덩치가 별로 크지 않다. 그래서 오래된 노거수를 만나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경남의 노거수를 조사한 수목 전문가에 의하면, 충렬사에 있는 금목서 3그루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노령수라고 한다. 정당 마당에 있는 두 그루와 외삼문 아래 오른쪽에 있는 한 그루가 비슷한 시기에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수령 250년에서 300년가량 되었다고 한다. 이번 가을에는 꼭 충렬사를 참배하며 금목서 향에 취해볼 일이다.

저자 주. 통영을 만나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묵묵히 통영의 역사와 함께 해온 노거수를 찾아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진은 정당 우측의 금목서입니다. 짙은 향이 느껴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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