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승

보았니?
진흙탕 속 불밝힌
관음님 자태
꿈속에서 맡아보던
엄마의 향기도

[시작(詩作)노트]

《염화시중의 미소-연꽃》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참 뜻을 헤아리고 미소를 지었다고 하는 꽃이 바로 연꽃이다. 그래서 연꽃하면 으레 깨달음의 꽃, 빛의 꽃으로 통하곤 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상징으로 종종 비유되기도 한다.

연꽃은 우리나라에 불교문화가 들어오면서 불상, 불화, 탑, 건축물, 불구 등에 널리 그 모양이 활용되었다. 고려 때는 연뿌리와 연꽃 봉우리까지 감히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연꽃의 종교적인 상징성이 컸다.

연꽃은 우리 정신문화의 한 중심에 피어 있는 꽃이다.

홍련, 백련, 황련, 어리연, 가시연 등 종류도 많다. 깊고 더러운 곳일수록 더욱 함박스럽게 핀다. 캄캄한 하늘을 이고도 대낮처럼 밝게 빛난다. 연꽃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내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이다. 대부분의 꽃은 꽃잎이 지고 씨방이 여물어 가지만 연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원인과 결과가 늘 함께하는 인간의 도리를 암시해 주고 있다.

불가에서는 연꽃을 ‘만다라화’라고도 한다.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오묘한 법칙이 연꽃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리라.

연꽃은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곧 성자(聖者)의 모습에 비유 될 수 있다.

연씨의 생명력은 실로 놀라운 바가 있다. 어떤 인문학자가 이탄층에서 발견한 연씨를 발아시키는데 성공했는데 그 지층의 연대가 삼천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경남 함양의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연씨가 700여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의 사례가 있듯이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속세의 번거로운 일들에 물들지 않는 꽃이라 하여 군자화라고도 불렸다. 동양의 얼굴 같다. 동글고 원만하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온화해지고 즐거워진다. 또 연잎에 이슬이나 빗물이 앉으면 고개 숙여서 자신을 비울 줄 안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큼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비움의 꽃이라고도 한다. 연꽃은 꽃과 잎이 함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잎을 가지고 자라는 줄기와 꽃을 가지고 나오는 줄기가 다르다. 절대로 한 줄기에서 잎과 꽃이 피지 않는다.

연꽃은 외롭게 혼자서 피게 된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우뚝 서 홀로 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인도 고대 종교에서는 ‘무명(無明)을 깨치는 태양을 낳는 꽃’이었다. 그것을 범어로 하면 연이, 여니, 요니(yoni)라 한다. 그리하여 연꽃은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연화사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요가에서는 우리 몸 안에 일곱 군데 에너지 센터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꽃으로 묘사된다.

고구려의 쌍영총과 백제 부여의 능산리 고분 벽화에도 연꽃이 그려져 있다. 당나라 현종이 해어화(解語花)라 하여 말을 알아듣는 꽃으로 양귀비를 비유한 이후로 아름다운 미인을 지칭하기도 하고, 미인의 걸음걸이를 연보(蓮步)라 이른 것도 모두 연꽃의 고귀한 자태를 대변한다. 이집트 신화나 그리스 신화에서도 연꽃은 사람과 여성의 생식을 상징하였다. 태양신을 상징하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꽃을 태양의 상징으로 신성시 하였다. 연꽃은 현재 이집트, 인도, 베트남, 몽골 등의 나라꽃이다.

불속에 핀 연꽃이란 뜻으로 화중련(花中蓮)이란 표현도 예사롭지 않다.

옛 풍류객들은 먼동이 틀 무렵 연꽃이 꽃잎을 튀울 때 여기 저기서 ‘퍽’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피는 ‘개화성(開花聲)’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 천지에 이만한 풍류가 또 있을까? 연은 대단히 유용한 식물로 식용 또는 약용으로도 애용된다. 연근, 연밥, 연잎,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특히 연차는 피를 맑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입냄새와 니코틴을 제거시켜주고 숙취를 해소 하는데 좋다 하여 인기가 좋다.

주장자 내리치는 선지식의 기상으로 피어나 불볕더위 속 이 땅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꽃들의 합창, 그 소리없는 외침은 인간 세상을 향해 탐욕도 내려 놓고 번뇌도 떨쳐버리라고 한다. 청정한 연꽃 향기가 세상을 덮으며 범부들의 세계에서 또 한번 조용히 연꽃을 들어 보이시는 영산(靈山)의 회상(會上)이 전개되고 있다. 이 초여름 밤에 과연 누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를 지을 것인지, 가섭존자처럼.

“쌓이는 이슬방울/ 또르륵 똑 다 비우고/진흙 속 피워 올린/하늘나라 닮은 미소/그 미소 고운 향 되어/ 온 천지를 향기롭게

새벽 별 떠오를 때/ 꽃망울 터트리는/
은은한 백련 홍련/관음 손길 닮은 사랑/그 사랑 어둔 하늘을/대낮처럼 밝히네”
(필자의 졸시,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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