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호박엿은 원래 후박엿이었다. 엿을 고을 때 후박나무 껍질을 넣던 풍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후박나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호박엿으로 바꿔 불러서 이름이 바뀌어버렸다. 덕분에 울릉도 후박나무는 멸종을 면할 수 있었다. 토산품이 제 이름을 잃어버린 덕에 천연기념물이 살아남았다.

자연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이치다. 좋은 것 속에 나쁜 게 들어 있고, 나쁜 것 속에 좋은 게 들어 있다. 그래서 섬 어른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후박나무는 남해안 따뜻한 섬 지역과 울릉도, 일본과 대만, 중국 남부 등에서 자란다. 5월 초순 황록색 꽃이 조롱조롱 앙증맞게 달린다. 크기가 1cm도 채 되지 않는다. 작디작은 꽃에서 맺힌 씨앗이 거대한 수목으로 자라는 게 신기하다.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고, 큰 것 속에 작은 게 있다. 작다고 무시하지 않고, 크다고 기죽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이를 지혜라 불렀고, 지금은 과학이라 부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는 여러 곳에 있다. 통영 추도와 우도 외에도 남해 창선도, 진도 관매도, 부안 격포 등. 후박나무는 따뜻한 바닷바람에 잘 자란다. 수형도 이쁘고, 색감도 좋다. 그늘도 커서 마을 수호목으로 안성맞춤이다.

식물 전문가인 어느 지인은, 후박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통영 대표 수목으로 삼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우도 후박나무는 추도 후박나무와 더불어 통영을 대표하는 천연기념물이다. 둘 다 500살로 추정된다. 합계 나이 1,000살의 동무가 있으니, 통영의 자랑이요, 외롭지 않은 역사의 기둥이다.

여러 노거수 후박나무 중에서 우도 후박나무는 독특한 면이 있다. 다른 후박나무는 높고 넓게 자라 그늘 속에 다른 나무들을 품는다. 그런데 우도 후박은 100살 어린 생달나무와 한 집을 이루어 산다. 둘의 품에 들면 누가 후박이고, 누가 생달인지 헷갈린다. 신윤복 선생이 즐겨 쓴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의 전형이다.

후박은 후박이요, 생달은 생달이다. 동시에 생달 곁의 후박이요, 후박 곁의 생달이다. 제각각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상호 연관된 정체성이다. 400여 년 전에는 낯선 둘로 만났지만, 세월이 쌓이면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다. 제각기 개성을 고집하면 400년 묵은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깨어지고, 개성을 무시하면 발전도 없고 현상 유지도 어렵다.

합계 나이 900살의 두 노거수 거목이 만든 그늘에 팽나무, 사철나무, 계요등, 섬딸기 등이 어울려 자라며 작은 숲이 되었다. 이 숲에 의지해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늘 배고 배운다. 그래서 작은 섬에 깃들어 사는 가정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가 늘 화목하다.

근현대를 거쳐오며 인간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자연의 이치로 믿고 살아왔다. 인간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신념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한 단견이다.

자연에서는 모든 생명이 공생의 토대 위에 경쟁하며 살아간다. 경쟁은 빙산의 일각처럼 표면의 작은 부분이고, 자연의 실체는 공생이 근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경쟁만으로는 자연이 유지될 수 없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후박과 생달이 만든 그늘에서 오늘도 우리는 배운다. 후박나무의 꽃말은 모정이다. 이름대로 후박한 껍질은 속을 다스리는 약재로 어머니의 손길 같고, 바닷일 나간 자식들을 멀리서 지켜봐 주는 그 마음을 꽃말에 담았나 보다.

저자 주. 지난 호 칼럼에서 통영의 천연기념물이 단 둘뿐이라고 썼는데, 이는 단일 나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숲을 포함하면 통영의 천연기념물은 모두 다섯입니다.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 홍도 괭이갈매기 번식지, 욕지도 모밀잣밤나무 숲, 우도 생달나무와 후박나무, 추도 후박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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