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물고기

바람결 풍경(風磬)
살풀이 춤사위에
일렁인 눈물
피안의 저쪽
소식 한자락 들릴 듯 말 듯

[시작(詩作)노트]

처마자락에 매달려 뎅그렁 뎅그렁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는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에 걸맞게 호젓한 분위기를 일깨우고 있다. 헌데 왜 이런 풍경에는 물고기가 달려있을까?

물고기는 귀가 없는 대신에 소리의 파동에 특별한 감수성을 지닌다. 많은 신화와 전설들에 물고기가 등장하는 것은 이 육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고기가 사는 물을 서양 심리학 이론에서는 무의식과 감정을 나타내며 그것은 슬픔이나 기쁨의 눈물이기도 하다. 많은 문화와 교의(敎意)들에서 물고기는 목적에 대한 희생을 상징했다.

불교에서는 목어(木魚)는 물속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목재 법구를 말한다. 즉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속이 비게 파내어 양벽을 나무 막대기로 두들며 소리를 내는 법구다. 어고(魚鼓), 목어고(木魚鼓), 어판(魚板)이라고 하며 범종각에 매달아 놓는다. 목어는 물속의 중생구제 이외에도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증수교원청규 목어조’에 따르면 한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방탕한 생활로 인해 죽어 물고기로 환생한 제자가 슬피 우는 것을 보고, 수륙제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날 밤 제자는 스승의 꿈에 나타나 '‘저의 등에 난 나무를 깎아 저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만들어 쳐 주십시오. 수행자들에게 제 이야기가 좋은 교훈이 되도록 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후 스승은 그 나무로 목어를 만들어 대중을 경책했다.

목어는 대부분 물고기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물고기 형상에 용의 얼굴을 한 것도 있다. 용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경우에는 입 속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는 잉어가 용으로 변화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길고 곧은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걸어 놓고 치는 목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둥글게 변했다. 둥근 것이 더 변형되고 작아져 휴대가 가능해진 것이 바로 목탁(木鐸)이다. 목탁의 길게 파인 홈과 양쪽의 둥근 구멍이 물고기의 입과 눈이라 생각 해 보았는지요?

또한 주술적 의미도 곁들여 있다. 화기(火氣)를 누른다는 것이다. 즉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을 매어달아 놓았다.

그러나 이 불은 실체의 불만이 아니라 마음의 불도 포함된다. 바람이 세찰수록 화재의 위험이 그만큼 높기에 그런 밤에는 풍경이 밤새 울어 대중에게 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던 것이고 또 우리 마음에 팔풍(八風) 즉 이익이 되는 것 ‘이(利)’ 세력이 줄어드는 것 ‘쇠(衰)’,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 ‘훼(毁)’, 기리는 것 ‘예(譽)’, 칭하는 것 ‘칭(稱)’, 비웃는 것 ‘힐(詰)’, 고생하는 것 ‘고(苦)’, 즐거운 것 ‘락(樂)’이 거칠수록 올바로 깨어 있어야만 삼독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부산 금정산의 유래를 보면 언젠가 하늘에서 내려온 금어(金魚)가 산꼭대기 샘에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샘은 마르는 법이 없어 금빛 물이 흘렀다. 샘의 이름이 금정(金井), 즉 금샘이고, 샘을 품은 산은 자연스럽게 금정산(金井山)이 되었다. 이후 의상대사는 산자락에 절을 열고 이름을 범어사(梵魚寺), 즉 하늘 물고기의 절이라고 지었다.

물고기는 성서와 미술, 문헌 등에서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자주 나타난다. 성서에는 물고기를 거론하거나 상징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60곳이 넘는다. 로마의 탄압을 받던 초기 그리스도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신어(神魚)사상은 물고기가 아이콘으로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하는 장면이 영화에 여러 번 나온다. 그리고 지하 교회인 카타콤에 오병이어(五餠二魚)를 그렸다. 즉 예수가 떡 다섯 개가 가운데 있고 물고기 한쌍이 양쪽에서떡을 보호하는 그림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물고기가 인간의 혼을 자신의 뱃속에 넣어 나른다고 했는데 이런 전설의 의미는 사제들만이 물고기를 성찬용 음식으로 먹었던 시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상징이자 그 자신, 즉 그리스어로 물고기는 익투스(Ichtus)이고, 이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니셜과 발음이 같다고 한다.

부처님의 족적(足跡)에도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물고기는 여러 종교에서도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서양에서는 물고기 세 마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물고 물리거나 머리 하나를 공유하는 무늬가 있다. 트리쿼트라(Triquetra)라 불리는 이 무늬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북구에서 오딘(Odin)신(神)의 힘을 상징한다는 발크우트(Valknut), 켈트(Celt)의 성호(聖號), 기독교에서 삼위일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몽골인에게 물고기는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부적이었다. 몽골의 풍속에는 물고기가 매우 영특한 존재로 되어 있다. 물고기는 사람의 눈으로는 잘 안보이는 물속에 살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을 다 본다고 믿고 있었다. 물고기는 사람보다 눈이 좋아서 물속에서도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지 또는 위험에 처했는지 살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마교를 신봉하는 몽골 사람들은 물고기를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 두 마리의 물고기를 신봉하는 신앙이 후대에 티베트의 라마교에 습합되어 라마교 팔보(八寶)중의 하나가 되어 사원에 장식되었으며, 라마교가 몽골인들에게 전파된 후 몽골인들도 라마교 사원에 쌍어(雙魚)를 귀하게 모시고 있다.

고구려의 주몽이 부여를 떠나 남하 할 때 물고기와 자라가 놓아주는 다리 덕분에 큰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전설이 삼국사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여족 같은 유족민에게도 물고기 신앙이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언어학자 강길운 교수의'가야어와 드라비디어의 비교(I)'라는 논문에서 가락과 가야는 모두 물고기라는 뜻의 드라비다 계통의 말이라고 했다. 가락(Karak)은 구(舊)드라비디어로 물고기를 뜻하고, 가야(Kaya)는 신(新)드라비디어로 물고기라는 것이다. 예전에 고사때 북어를 광목에 묶어 방안에 매달아 두었다거나, 떡시루에 북어 두 마리를 꽂는 풍습도 있고 고리나 반다지, 쌀뒤주에 걸린 물고기 모양 자물쇠들, 백제 무령왕릉의 두침(頭枕)에도, 신라 금관총의 금제 허리띠에도,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도 물고기는 어김없이 등장해 죽은 이를 지키고 있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스키타이, 간다라, 윈난, 쓰촨, 수메르, 야마다이코쿠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두 마리 물고기 즉 쌍어(雙魚)는 만물을 보호하는 수호신적 의미가 있었다. 티베트인들은 연꽃 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한 쌍의 물고기를 행복의 상징으로 여긴다.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을 운행하는 자동차에 그려진 쌍어 문양, 왜국 여왕의 옷을 장식한 쌍어 문양, 차마고도에서 발견되는 쌍어 문양, 중국에서는 여행자들의 숙소나 식당, 재물을 지키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김해 수로왕릉 정문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입을 마주대고 있는 무늬 즉 쌍어문이 새겨져 있다. 이는 김해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 황후가 인도 아요디아에서 시집올 때 가야에 가져온 쌍어 신앙의 영향이다. 인도 아요디아에서는 마누 조상을 구해준 물고기를 신으로 삼았다. 이것이 허황옥이 떠나온 코살라국에서 쌍어문을 문장(紋章)으로 삼은 신화적 배경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김해 은하사, 울산 개운사, 양산 통도사 삼성각, 양산 계원사 등지에서도 이 두 마리의 물고기 쌍어(雙魚) 문양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절집에 앉아 차한잔 마실 때 이따금 들려오는 저음의 깊은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이리 저리 떠돌던 번잡한 마음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평화가 찾아듦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이럴 때 풍경소리는 천상(天上)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나민애 문학평론가는 ''바람 한 조각으로도 이 세상은 무심에서 유심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벌써 본격적 더위가 오는 듯 한데, 왠일인지 오늘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며 뎅그렁 거리는 풍경 소리에 괜스레 누군가가 아련히 그리워진다.“뎅그렁 바람따라/바람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소리일 뿐/아무도 그 마음 속 깊은/적막을 알지 못합니다./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無上)의 별빛,/아! 쇠도 혼자서 우는/아픔이 있나 봅니다.”
라는 김제현 시인의 '풍경'이라는
시도 저절로 떠올려지면서.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