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신다.

나는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싸웠다.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장수의 길을 택했고, 승리만이 목숨을 살리는 길이기에 주저 없이 적의 목을 베었다. 군율을 어지럽힌 병사를 가차 없이 처형한 것은 승리를 위해서였다. 오직 승리만이 백성을 살릴 수 있기에, 적선을 깨부수었고, 한 놈의 왜적도 살려 보내지 않으려 했다.

후손들이여, 나의 죽임이 생명을 살리는 데 뜻을 두었음을 잊지 말라. 나를 승리의 장수로만 기억한다면 나를 욕보이는 것이다.

내가 죽고 300여 년이 지나서 이 땅이 또다시 왜적의 총칼 앞에 쓰러졌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그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이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같이, 백성을 살리기 위해 총칼을 치켜든 후손들이 있었다. 고마움에 눈물이 흘러 철릭의 소매를 적실 지경이었다. 그중에 홍범도라는 장수가 있었다. 백두 밀림에서 맹수 잡던 포수였지만, 왜적을 향해 총포를 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용맹했다. 내가 그러했듯, 언제나 이겨놓고 전투에 임했다. 적을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작전은 신출귀몰했다. 왜는 그를 향해 '날으는 홍범도'라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다. 봉오동, 청산리가 그의 앞마당이었다. 한산 앞바다가 나와 조선 수군의 앞마당이었듯이.

그러나 그는 나보다 운이 없었다. 내가 한산대첩으로 견내량을 묶어버림으로써 왜선은 단 한 척도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승리하자 더 많은 일본군이 몰려와 3,6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했다. 수백의 독립군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전세였다.

나는 전장 인근 마을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적의 퇴로를 열어주었지만, 그는 간도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백두 밀림을 버리고 연해주로 퇴각해야만 했다.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퇴각뿐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건너와 황무지를 일구던 죄 없는 백성들이었다.

나는 어리석은 조정으로 인해 견내량과 남해 바다를 한때나마 왜군에게 빼앗겼지만, 천신의 도움으로 앞마당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일본군의 '간도토벌작전'을 피해 연해주로 이동한 3,600여 독립군은 자유시, 스보보드니로 집결했다. 조국으로 다시 진격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던 중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적군과 백군의 투쟁, 일본군의 침공, 독립군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간의 갈등이 뒤엉킨 가운데 참변이 벌어졌다.

동족 간의 전투로 수십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전사들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적군(赤軍)으로부터 무장해제를 요구받은 것도 모자라 느닷없이 동족으로부터 공격받자, 설움에 북받쳐 대응 사격도 못하고 죽어 나간 금쪽같은 조선의 빨치산들.

내가 한양으로 압송된 상태에서 삼도수군통제영이 적의 한 차례 공격에 괴멸되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때 나는 오장육부가 끊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홍범도 장군 또한 그러했으리라. 이웃 도시에서 벌어진 사태의 참상을 목격하고, 피로써 맹세한 동지들을 적군과 동족의 손에 잃은 그 비통함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저자 주.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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