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한가위

휘영청 보름달 속에 담긴 전설들
두귀 쫑긋 들어보라

이 아이 호호헤헤 저 아이 까르르르
하늘도 따라 웃다 눈물까지 흘리시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으시라

[시작(詩作)노트]

달을 떠올리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이병주 작가의 정감어린 문학적 표현이 먼저 둥실거린다. 서늘하고 고독하면서도 그 속 어딘가에 따뜻하고 포근한 그런 온기를 품고 있을 듯한 느낌!

달은 신이고 전령사이며 선(善) 또는 악(惡)의 상징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남성이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이다. 어떤 곳에서는 죽음을 은유하고 어떤 문화권에서는 부활을 상징한다. 남매나 부부, 음양으로도 묘사되었다.

달은 변화와 성장을 한눈에 보여준다. 달의 신 찬드라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되풀이하듯 우리의 삶도 높낮이, 부침, 흥망성쇠를 경험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변화 무쌍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시시때때로 희노애락 등의 감정의 기복을 맛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마치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삭(朔)의 주기로 달이 변하듯 말이다.

고대인들은 왜 달이 여성적 특성을 가졌다고 믿었을까? 달이 해처럼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고 해가 내뿜는 빛을 반사해 빛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해가 사라지면 풍성한 모습을 드러내는 점이 마치 부드럽고 조용한 성품의 여성과 닮았다고 보았다. 달이 차서 기우는 순환 주기와 여성 생리 현상(월경, 月經)이 같은 주기로 반복을 거듭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가 로마 신화에 가서는 다이아나(Diana)가 되고, 또 그리스 신화의 셀레네(Selene)도 로마 신화에 가서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남매지간인 루나(Runa)가 된다.

이집트에서는 이시스(Isis)가 있고, 에스키모는 이갈루크(Igaluk)가 있다. 중국으로 가면 항아(姮娥)라는 선녀가 월궁에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전 설화에는 호랑이에 쫓긴 남매가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멕시코의 마야인이나 아즈텍인, 페루의 잉카인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해를 숭배하고 찬양했다면, 우리 조상들은 달을 안고 살며 달을 찬미했다. 달의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하여 달은 많은 시인 묵객들의 좋은 작품 소재가 되고 은유가 되고 배경이 되었다.

신라의 찬기파랑가부터 고려가요, 시조, 민요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달이 등장한다. 선조들은 뜨고 지는 달을 보고 유정물 무정물의 생성과 소멸을 체득하며,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이치와 교훈을 새겼다. 나고 죽는 삶을 되돌아 보며 인생무상을 노래했다. 온갖 권력과 부를 누리면서 천년만년 살 듯 안하무인 거들먹거리는 위정자들이 곱씹어야 할 경구이다.

달빛 비치는 정감있는 풍경을 잘 그려낸 곡을 꼽으라면 단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月光)을 든다. 1801년 작곡된 이 작품에 독일의 음악 평론가 레루 슈티프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19570년 미국의 유명 싱어 송 라이터 겸 영화배우인 폴 앵카가 16세에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데뷔곡이자 첫 번째 히트송이 달의 신을 상징하는 '다이아나'이다.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마이웨이(My Way)'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흑인 노예들이 낮에 힘겹게 일하고 겨우 밤이 되어서야 휴식을 취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단한 삶의 애환과 한서린 정서를 쏟아냈던 음악이 바로 재즈이다. 그래서 재즈는 달과 연관성이 있고 밤에 더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수에 찬 곡조나 푸른 기운이 감도는 색조를 띤 곡들이 유독 재즈에 많은 연유라고 생각된다.

나이 들어도 아직까지 동심의 달 속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 찧고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또 동심의 그 때로 돌아가고픈 향수도 있다. 그러나 은유와 신화는 과학에 의해 늘 그렇게 허물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 부르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많은 걸 잃고, 더 가난해졌다.

요즘은 윤극영 작사 작곡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되는 '반달' 같은 동요를 부르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를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사랑 타령, 이별, 눈물 등의 가사로 점철된 유행가 등을 부르며 몸을 비비꼬고 흔들며 어른 흉내내는 아이들을 보고 잘한다고 웃고 박수치고 있는 작금의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달 속에서 찾던 천진난만한 동심은 이제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가난해지는 동심의 끝이 두렵기만 하다.

오늘밤 아무쪼록 달의 정기를 듬뿍 받아 들여서 심신을 활기차게 추스려 볼 일이다. 저 한가위의 달을 일년 내내 마음속에 걸어둔 채, 혼탁하고 치졸한 마음들을 달빛 속에 깨끗이 헹구었으면 좋겠다. 가득찬 욕망의 때를 걷어내어 좀 더 환해지며, 날선 원망과 편견으로부터 좀 더 둥글어져서, 우리의 영혼이 달빛마냥 순하고 부드러워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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