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구 선생. 언뜻언뜻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뇌리에 남지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해 통영을 방문한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강연을 통해서였다. 승효상 선생이 설계한 제정구 커뮤니티센터가 고성 대가면에 있었다. 강연 영상에서 만난 센터는 정갈하면서도 텅 비어 있어 오히려 꽉 찬 느낌이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고, 없는 것도 형상을 만들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교회와 절을 크게 짓는 것도 다 그런 이유겠다. 보이지 않는 말씀을 보이게 해줘야 사람들이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만큼 형상이 중요하다. 본질과 상관없이.

우리가 형상을 보는 것은 빛 덕택인데,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可視光線)이라 부른다. 그 말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이 있다는 말이다. 빨강부터 보랏빛으로 분류되는 가시광선은 빛의 파장에 따라 나뉜다. 그런데 붉은 빛 바깥에 적외선이 있고, 보랏빛 바깥에 자외선이 있다. 이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바깥에 장파도 있고, 파장이 더 짧은 단파, 초단파, X선, 마이크로파 등이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이 무궁무진하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실을 만났다.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늘 조심스럽다. 어찌 사람을 안다고 함부로 글을 쓰겠는가? 하물며 근래의 사람은 더더욱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사람 이야기 앞에서는 글이 늘 멈칫거린다. 제정구 선생도 마찬가지다. 빈자의 친구가 되어 "가짐 없는 큰 자유"를 누렸던 사람, 제정구. '이야기'로 담아내기엔 너무 크다.

전시실을 둘러보고 센터 한편에 자리 잡은 카페에 앉아 창밖에 앉은 선생의 동상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선생은 대가저수지와 건너편 고성읍의 아파트들, 그리고 그 너머 벽방산을 바라보고 앉았다.

흰 구름이 초가을의 하늘을 가는 듯 선 듯 흘러간다. 서울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박차고 나와 평생 빈민들 속에서 빈민으로 살아간 선생. 빈자천하지대본을 외치며 판자촌과 성당과 국회를 오간 사나이. 그가 지금 한가로이 앉아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평범한 일상을 담은 선생의 조각상은 임옥상 화백의 작품이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도 있고, 서거나 앉아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시선에 삶이 녹아있다. 시선은 힘이다. 평범한 일상이 삶의 본질이고, 어두운 세상을 개혁하는 기둥임을 묵언으로 보여준다.

크지 않은 작은 건물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승효상 건축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의 한 명으로 꼽히며, '비움과 절제'의 건축가로 유명하다. 딱 맞는 조합이다.

백합나무 100여 그루로 둘러싸인 붉은색 철골구조는 강골이었던 선생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들 곁에서 제 몸을 녹여내었듯 시나브로 녹슬어 가는 붉은 철재는 딱 그대로 선생의 육신이요, 붉은 마음이다.

단순한 삼각 지붕은 우리 전통 맞배지붕을 닮았다. 맞잡은 두 손처럼 하늘을 향해 간구하는 듯하다. 배고픈 이들, 병든 이들, 외로운 이들, 배우지 못한 이들, 차별받는 이들이 모두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염원했던 선생의 한마음이 서려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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