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립박물관에서 ‘삼도수군통제영 지도展’이 열리고 있다. 전국의 박물관에서 모셔 온 진귀한 통제영 옛 지도들이 가득하니 꼭 관람해 볼 일이다.

옛 지도를 보고서 '검은 건 선이요, 흰 건 종이다'라고 한다면 까막눈이요 하수다. 검은 선과 채색으로 이루어진 지형과 지물, 이것들로 이루어진 공간을 본다면 중수다. 얼마 전까지 내 모습이었다. 군에서 독도법을 배웠지만, 전투에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방편일 뿐 시공간을 꿰뚫는 안목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도에서 공간을 넘어 역사의 흐름과 인간 삶의 갖가지 면목, 나아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철학을 만난다면 상수다. 통제영 지도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 세 가지 간(間)이다. 진주국립박물관 관장님이 열어준 통제영 지도 읽기의 서막이었다. ‘삼도수군통제영 지도展’과 함께 열린 박물관 대학 첫 강의에서였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글을 읽을 때 행간을 보라던 이야기와 닿아있었다. "저게 통영성이다, 저게 세병관이다, 저게 거북선이다, 옛날엔 지도를 저렇게 그렸구나, 조금 비현실적이지 않아?" 그렇게만 보았던 지도였다. 박물관대학에서 고지도 보는 법을 배우고, 전시관에서 삼도수군통제영 지도전을 관람하고서 안목이 조금 열리는 느낌이랄까, 지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장영실이나 최무선 같은 몇몇 인물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과학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도에만 한정해서 봐도 그렇다. 한국의 지도학은 역사가 깊고 두텁다. 1402년 조선에서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세계지리학회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지도였다. 아메리카 대륙이 알려지기 이전의 세계 전체를 포함한다. 심지어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까지 표현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통제영 고지도는 모두 20점이다. 1점은 통영박물관 소장품이고, 1점은 복제품이다. 나머지 18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전쟁기념관, 온양민속박물관, 고려대와 영남대 박물관 등 전국의 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진품들이다.

이렇게 많은 고지도가 지역 박물관에 모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십 년 전 진주국립박물관에서도 겨우 몇 점을 모았을 뿐이다. 특히 한 지역의 지도를 다양한 모습으로 한자리에서 보는 건 매우 드물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 중에서 이처럼 많은 지도가 그려진 곳은 몇 곳 되지 않는다. 통영과 평양이 압도적인데, 물산이 풍부하고, 국방의 요충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뒤로 진주와 전주, 함흥 등이 따른다.

스무 점 모두 조선시대에 제작되었지만, 제작 연도가 남아있지 않아,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선후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통영의 옛 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망산이 섬으로 표현된 지도도 있고, 어로작업을 하는 어선과 어부의 모습을 담은 지도도 있다. 이 지도에서는 통영항 내를 순찰하는 순시선이 보이는데, 장교로 보이는 인물이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그려져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선의 지도는 성리학적 가치관을 담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조선을 중국에 버금가는 면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성리학적 세계 질서 아래 국가 경영의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소중화주의 세계관을 믿던 사대부들은 사라진 명나라와 일본에 편입된 유구국, 오키나와를 표현하기도 했다. 한반도를 인체로 해석하면서 제주도와 대마도를 사람의 발로 표현한 지도도 있다.

저자 주. <삼도수군통제영 지도전>은 통영시립박물관에서 12월 10일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귀한 전시를 묵묵히 준비해 온 강선욱 학예사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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