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회상

뒷산 솔바람에 펄럭대는 문풍지
강물 쩡쩡 금가는 곧추선 한파도
울긋불긋 묵직 두툼 투박*했던
그대 앞엔 꼬리를 내렸지
아랫목 뽀그르르 술익는 소리 너머로

*목화솜 이불

[시작(詩作)노트]

본격적인 겨울 날씨로 접어 들고 있다. 이럴땐 무엇보다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이 그리워진다.

요즘 극세사, 옥수수를 원료로 한 인지오, 듀폰 리뉴어블, 오리털, 거위털, 양모 이불 등등 이름도 생소하고 다양한 이불들이 제각기 화려한 모습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예전 목화솜 이불만큼이나 할까?

목화솜 이불은 예전엔 사위나 며느리가 오면 좋은 이불을 덮어준다고 장만해서 장롱 속 깊이 꼭꼭 숨겨 놓았다가 내놓았던 추억 속의 물건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다보니 때로는 천덕꾸러기 아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목화솜 이불의 장점은 너무 많다. 섬유 사이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서 보온이 잘 되고, 온도와 습도 또한 자동으로 조절 된다. 두께감도 상당해서 깔개로 사용하면 푹신해서 등이 배기지 않아 좋고, 이불로 덮으면 묵직하고 따뜻하다. 목화솜은 식물성 천연 섬유이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 하다는것도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자연친화적인 섬유라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이런 연유로 예전엔 가격이 저렴했으나 근래엔 오히려 더 귀하게 여겨져 가격도 만만치 않다.

목화솜은 흡수성이 뛰어나고 특유의 향이 있기때문에 다른 솜보다 통풍과 건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햇볕에 2~3시간 널면 30년이상 사용할 수 있다 한다. 단 솜이 누렇게 변하거나 퀴퀴한 냄새가날 때, 유난히 이불이 무겁게 느껴지고 일광 소독을 해도 숨이 살아나지 않을 때는 솜을 틀어 줘야 한다.

목면과 목화 모두 목화꽃이 피는 식물로 목면은 다년생 나무, 목화는 한해살이 풀을 일컫는 말이다. 인도와 동남아 등 열대 기후지역이 원산지이며, 기원전 3000년 경에 인도에서 최초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14세기 중엽 고려 때 문익점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면과 목화씨를 들여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문익점선생은 고려 충혜왕 원년 1329년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면서 당시 외부 유출이 엄격하게 금지 되었던 목화 종자를 위험을 무릎쓰고 붓대롱 속에 숨겨 가지고 오게 된다. 10여개의 목화씨앗을 고향 산청 땅에 장인 정천익과 함께 처음으로 심어 재배에 성공하였고, 전국에 전파하여 의류혁신과 국가 경제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 삼베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 의복사에 길이 남을 공을 세운 것이다.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꽃말처럼 선생의 지극한 애민(愛民)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70세인 1398년 2월 8일,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펄펄내리던 날 눈을 감았다고 전해진다. 산청군 단성면에는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 사적비가 국가지정문화재(제108호)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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