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성종 때 완성된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여자의 단독 여행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다. 발각되면 곤장형이었다. 삼종지도와 여필종부가 상식이요 법으로 통하던 그 시대에, 남장을 하고 전국 유람을 떠난 소녀가 있었다.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던 강압적 남녀차별을 생각하면, 상상 밖의 일이었다.

1817년 원주에서 태어난 김금원의 이야기다. 신분은 원주 감영의 관기였다. 15세가 되면 관기로서 독자 행동이 불가능했기에 부모의 허락을 받아 14살에 몸을 일으켰다. 원주를 떠나 호서 지방을 시작으로 금강산과 관동팔경, 평양에서 의주까지 관서 지방과 한양을 두루 여행하였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수많은 독서로 내공을 다졌다. 울타리 안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김금원의 행보는 넓었고, 생각은 닫혀있지 않았다. 여행을 마친 이듬해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는데, 둘은 환상 배필이었다. 김금원의 꿈과 재능을 알아본 남편의 도움을 받아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라는 시모임을 열어, 여성 문인들과 교유하며 시단을 형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살롱 문화를 열어젖힌 신여성이었다.

31세가 되던 해에는 그간의 여행 경험을 담아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라는 유람록(遊覽錄 ), 즉 여행기를 출판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람록을 쓴 여성이었다. 이 책은, 한국을 사랑한 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니고 다녔다. 1915년에 출판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여행기에 김금원의 시선이 녹아들었다. 1925년에는 기록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조선의 천재 추사 김정희는 김금원의 기개와 도전 정신, 문장력에 감탄하여 추모의 글을 쓰기도 했다.

얼마 전 통영RCE세자트라센터에서 '제15기 브릿지 투 더 월드(BTW) 한마당'이 열렸다. 청소년 33명이 3개월간의 활동을 수료하였고,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움직이자!’는 주제로 국내 또는 해외로 탐방을 떠난다. 해외 탐방팀은 세계 190개 RCE 중 자신들이 선택한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다리를 건너 세계를 탐방하고 올 청소년들에게 김금원의 사례에 비추어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나도 십수 년에 걸쳐 세계의 여러 RCE 도시들을 탐방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내 생각의 울타리를 우리 후배들은 뛰어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첫째, 실제 세상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은 김금원의 울타리 안쪽과 마찬가지다. 실재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온몸과 마음으로 관찰해야 한다. 지금만 보지 말고 긴 시간을 살펴야 하고, 우리 지역만 보지 말고 온 세계를 봐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뛰고 있는 소수의 활동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폭넓은 독서도 필요하다.

둘째, 정답을 찾는 대신 다양한 고민과 시도, 그리고 열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 정답은 없다. 외부에서 배운 것을 통영에서 실천해 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단순히 따라 배우던 시기는 지났다. 인류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 많다.

셋째,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당시에는 잘한다고 한 것들의 결과이다. 최근에 주목받는 사례일수록 더욱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성과에 주목할 게 아니라,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과보다 과정이다. 창조성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샘솟는다.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넷째,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많이 사귀기를 바란다. 우리가 맞닥뜨린 과제들은 창조, 자율과 연대, 공유의 힘으로 풀어가야 한다. 친구는 최고의 자산이다. 특히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는 함께 꿈꾸고, 함께 협력할 친구가 소중하다. 당연히 기성세대보다는 또래 친구들이 좋을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솔직히 우리 기성세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심지어,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들이 반드시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경험을 정리하고, 분석하여 친구들과 공유해야 한다. 어른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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