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다도해의 고장이다. 닫힌 듯 열린, 열린 듯 닫힌 바다. 끊어진 듯 이어진, 이어진 듯 끊어진 섬. 이 바다와 섬의 대향연이 통영의 다도해다. 다도해에서 살면서 다도해 기질을 갖고 다도해 문화를 만들며 살아온 통영 사람들. 이들이 일군 다도해 문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글에서 통영의 다도해 문화 사례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올린 뒤 몇몇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통영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 통영을 그리워하는 출향인, 통영 사람보다 통영을 더 사랑하는 또 다른 통영 사람. 이분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궁금하다.

지난 326화 "너물밥은 다도해 음식이다"(2022년 3월 19일)에서 썼듯이, 가장 눈에 띄는 다도해 문화는 통영 너물밥과 다찌 같은 음식문화다. 너물밥은 제철 채소를 기름에 덖지 않고 물에 데치고, 조개류를 넣어서 자박한 국물과 함께 먹는 통영 음식인데, 재료만이 아니라 먹는 방법이 다도해스럽다. 무조건 섞고 비벼서 먹는 여느 비빔밥과 달리 담백한 나물을 따로따로 먹다가 섞어서 먹다가 마지막엔 밥을 비벼 먹는다. 개인 취향에 따라 처음부터 바로 비벼서 먹기도 한다. 열린 듯 닫힌, 끊어진 듯 이어진 다도해의 식사법이다.

다찌는 또 다른 다도해 음식 문화로서, 공간형 상차림과 시간형 상차림이 융복합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밥상은 공간형이다. 밥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간에 모든 음식이 한꺼번에 차려진다. 물론 구첩반상을 마주 앉은 임금이 아니고서야, 한 상 그득하게 차린 밥상은 백성들과는 먼 얘기였다. 하지만 잔칫상과 제사상을 생각해 보면 우리 음식의 공간형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간형 상차림에서는,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순서가 달라지고, 같은 상에서도 전혀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반면, 소위 코스 요리라고 불리는 음식들은 시간형 상차림이다. 시간차를 두고 음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먹는 순서는 요리사에 의해 결정된다. 요즘 관심을 끄는 음식의 시각적 아름다움 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공간형이 조화의 미를 추구하는 종합적 미감이라면, 시간형은 개별 요리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즐긴다. 어느 쪽이 굳이 더 좋다고 따질 이유는 없다. 익숙한 게 좋다고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통영의 다찌는 공간과 시간이 어우러진 술상이다. 시작부터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몇 개의 접시를 비우고 나면 새로운 음식이 들어와 새로운 판이 짜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구성이 달라지고, 비슷한 듯 하면서도 새로운 상을 마주하게 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요리사의 몫이고, 먹는 건 손님의 몫이다.

굳이 따지자면 시간형 상차림은 요리사가 먹는 순서까지 결정하고, 공간형은 오로지 먹는 사람이 결정한다. 요리사는 먹는 순서에 개입하지 않는다. 통영 다찌에서는, 큰 흐름은 요리사가 좌우하지만, 구체적인 순서는 먹는 사람이 정한다. 전체와 부분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다. 만드는 이와 먹는 이가 서로를 배려한다. 끊어진 듯 이어져 있고, 닫힌 듯 열려있다.

또한 다찌에는 주요리가 없다. 뒤로 갈수록 비싼 요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앞서 나온 음식들이 '쓰기다시'는 아니다. 하나하나가 요리로서 완성된 것들이다. 그러니 주요리는 먹는 이의 취향 따라 변한다. 주요리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전체를 즐기는 이에겐 주요리가 없지만, 특정 요리를 좋아하는 이에겐 주요리가 있다. 더 달라고 청하기도 한다. 열린 듯 닫혀 있고, 이어진 듯 끊어져 있다.

570여 개에 달하는 통영의 섬들을 닮았다. 크다고 주인공이 아니다. 작은 섬부터 큰 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섬이 빛나는 보석이다. 제각각의 개성을 자랑한다. 동시에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다도해가 된다. 개별의 정취와 개성을 갖추었지만, 전체가 어우러져 세상에 둘도 없는 통영만의 다도해 세상이 펼쳐졌다. 너물밥이 그렇고, 다찌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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