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말고 다도해 문화다운 통영살이에는 어떤 게 있을까?

선거에서 이런 다도해 문화의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선거의 기준이 한결같지 않다. 때로는 잇고 때로는 끊는다. 중앙정부의 힘을 끌어다 쓸 필요가 있을 때는 여당에 표를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제아무리 힘센 정치인이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을 때도 지역색, 학벌, 정당 등 모든 것에 문을 활짝 연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닫혀있다. 지조 없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다고 오해받을 수 있지만, 깊은 맥락이 있다.

물론 이런 다도해스런 선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권 선거가 알게 모르게 배후에서 민심을 조종한다는 얘기도 들렸고, 막판에는 금권선거가 선거판을 흐릴 때도 있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을 백안시하거나 심지어 악마화하는 극단적 패거리 주의가 국내외에서 널리 확산하면서 이런 다도해 선거 문화가 실종된 것도 사실이다.

외지인과 지역인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다도해다운 기질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느 바닷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외지인을 향한 텃세가 없지 않다. 이 말에 가타부타 의견을 주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통영의 텃세가 유독 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남의 떡이 커 보이기 마련이고, 개인의 경험차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영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거꾸로 텃세'가 존재하기도 한다. 지역인들이 하는 가게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잘 가지 않는데, 오히려 외지인이 경영하는 가게는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살까 봐 미리 복통 예방 차원에서 그러는 것일까? 그래서 지역 사람이 하는 가게보다 외지인 가게가 훨씬 번창한다는 통계 아닌 통계도 있다. 지역인과 외지인을 향해 열린 듯, 닫힌 바다의 모습이다.

이처럼 외지인에게 닫힌 듯 열려있는 통영 사람의 기질을 설명할 때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와서 통제영에 뿌리내린 전라도 사람들이 많고, 통제사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한양과 경향 각지 사람들이 따라와 이룬 고장이니 통영은 태생적으로 지역인과 외지인의 구별이 의미 없다.

통제영 산하 공방이 조선 후기 공예산업의 메카가 되었기에 팔도에서 몰려든 최고의 장인들도 이런 기질 형성에 한몫했다. 고수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선진기술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닫는 게 자유로웠다.

그래서 통영 사람과 바깥 사람을 구분 짓는 건 어쩌면 통영이 통영다움을 잃어버린 결과인지도 모른다. 최근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특색 없는 개발로 통영다움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진짜 통영다움이 망가진 건 도시개발이 아니라 안팎의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외지에서 온 통영 사람들이 가장 상처받는 말 중에 "객지에서 와서 나대지 마라"는 말이 있다. 상대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말로 비칠 수도 있지만, 끊기만 하고 이을 줄 모르는, 닫기만 하고 열 줄 모르는 말이다. '통영다움'을 잃어버리고, '다도해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2중 상실의 언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400여 년간 끊임없이 서로 섞이고 융합하며 살아온 통영 사람에겐, 통영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통영 사람이요, 통영에서 땀 좀 흘리는 사람이 통영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고, 누구와도 이어져 있었다.

저자가 쓴 칼럼을 읽은 많은 분이 말씀하신다. "통영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통영 이야기를 세세하게 알고 있습니까?" 사실, 이분들의 말씀은 "세세하게 알고"에 무게중심이 있지만, 저자는 "통영 사람도 아닌데"에 관심이 쏠린다.

이 순간 나와 상대는 끊어진 섬 같다. 하지만 뒤이어 칼럼을 소재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우리는 서로 이어진 섬이 된다. 도래인을 향해 닫혔던 그의 마음은 어느새 활짝 열려서, 함께 웃고 함께 걱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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