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를 하나의 세상으로만 이해하는 이들은 '끊어진' 섬들의 개성을 보지 못한다. 구석구석 섬을 다녀본 이들은 안다. 비슷해 보이는 이 섬 저 섬이 얼마나 개성 넘치는지. 풍광도 다르고, 잡히는 물고기도 다르고, 밥상도 다르고, 덩달아 인심도 다르다. 섬마다 별천지요, 딴 세상이다.

반대로 570개의 섬을 따로따로 보면서, 어느 한 섬을 나만의 섬이라 부르고, 그 섬의 개성을 칭송하기에 바쁜 이들은 다도해 전체의 모습을 놓치기 쉽다. 바닷물 수위가 훨씬 낮았던 1만여 년 이전의 통영 앞바다를 상상해 보면, 섬들은 대부분 뭍이었다. 뾰족뾰족 솟은 크고 작은 봉우리였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물이 찼으면 섬이 되고, 드러나면 하나의 땅이 된다.

그러니 다도해는 570개의 섬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하나의 바다요, 하나의 땅으로 연결된 570개의 얼굴이다. 하나가 570개로 드러나고, 570개의 근본은 하나다. 작은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의 이치 그대로다.

큰 것 속에만 작은 게 있지 않다. 작은 것 속에도 큰 게 들어있다. '가시광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쉬 알기 어렵다. 가시광선은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의 선이라는 말이다. 뒤집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선이 있다는 말이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가시'의 영역보다 훨씬 넓고 광범위하다.

그러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극히 일부를 보고 있을 뿐이다.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전부라고 착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스스로 모른다는 걸 아는 게 진짜 지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빛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그 일부가 전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에 자외선도 적외선도 X선도 마이크로파도 없는 줄 알고 살아왔다. 과학기술의 힘은 이 지점에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보지 못하는 영역에 무한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하지만 무지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일까? 스스로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과학을 배우고도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적응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통영과 다른 지역을 나누고, 태어난 통영 사람과 이주해 온 통영 사람을 차별하고, 여당과 야당을 나누고,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악마화하는 동안, 우리는 섬이 끊어진 줄만 알지, 이어진 줄은 모른다. 바다가 닫힌 줄만 알고 열린 줄은 모른다. 섬 하나하나만을 볼뿐 그 뿌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570개가 하나의 다도해로 어우러져 전혀 다른 별세상이 만들어진 걸 모른다.

시장에서 생선을 팔다가도, 동네 사람이 오면 반갑다고 덤을 하나 더 주고, 낯선 외지인이 오면 또 반갑다고 덤 하나 얹어주는 그런 여유, 그런 미소가 진짜 통영다움이 아닐까?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아야 할 때 닫을 줄 아는 사람. 이어야 할 때 잇고, 끊어야 할 때 끊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다도해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통영 사람에게 다도해 기질만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경상도 사람의 정서와 한국 사람 보편의 정서가 동시에 깔려 있다. 한국 사람의 기질 또한 한국 사람만 가진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 바탕은 인류의 보편 정서다. 생명을 아끼고 평화를 사랑한다. 상처 입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돕고자 한다. 죽이는 것 보다 살릴 때 마음 편해한다. 제 잇속을 챙기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궁리를 한다.

그러니 열린 듯 닫힌, 닫힌 듯 열린, 끊어진 듯 이어진, 이어진 듯 끊어진 통영의 문화, 다도해 문화를 통영만이 가진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2% 정도 더 많이 가졌다고 보는 게 좋겠다. 문제는 이 작은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장점을 살려서 진짜 통영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 부유한 도시, 더 세련된 도시,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도시가 아니라, 더 행복한 도시, 더 아름다운 도시,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교류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서로 경쟁하고, 각축하다가 필요하면 하나로 똘똘 뭉쳐 협력하는 그런 도시가 진짜 통영다운 도시, 다도해 도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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