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텀벙이라고요?

아서라 물메기 팔자 시간 문제였군
일년 내내 세파에 시달린 지친 속
간 밤에 퍼마셨던 술독에 후루룩
소리내어 들이키는 국물 한 그릇
살랑살랑 세상이 환해지는 물렁 수류탄

[시작(詩作)노트]

《겨울 철 통영의 맛, 못생겨도 맛은 좋아 물메기 탕》

요즘 통영 정량동 동호항에 가면 겨울철 별미로 유명한 물메기를 배 위에서 말리고 있는 풍경이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추운 겨울에 어획하는 물메기는 겨울 철 최고의 맛으로 등장한다. 통영사람들은 물메기를 그냥 '미기'라고도 부른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제법 오래 배를 타고 들어가는 '추도' 섬 미기를 제일로 꼽는다. 이곳에서는 건조대에서 돌담에서 어느 집에서나 빨래와 같이 널기도 한다. 해풍과 햇볕에 나란히 나란히 일광욕 및 풍욕을 하며 흰뼈가 하얗게 말라가는 미기들을 볼 수 있다.

마을 전체가 결코 싫지 않은 미기 마르는 냄새로 꽉찬다. 그리하여 겉은 딱딱하고 속살은 꾸더꾸덕한 추도 물메기로 우뚝 서게 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경조사에 홍어가 빠지면 안 되듯이 이 곳 통영에서도 한 때는 미기가 빠지면 뭔가 허전하였다고 한다. 추도는 최고의 수질을 자부하는 물이 펑펑 넘치도록 솟아 오르고, 그 물이 추도 주변 바다로 흘러 들어 근해의 고기 맛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다는 말도 결코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급수선이 들어온 적이 없다는 섬이니 말이다.

사랑도 섬 근해에서 잡히는 물메기 역시 통영을 대표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메기는 흐물흐물하다. 빈 부대자락 같다. 세우자 마자 주르륵 퍼질러 댄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 같기도하다. 함지박에 담아 놓으면 끈끈한 죽같기도 하고, 고체같기도 하고 액체같기도하다. 도대체 뼈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민물메기를 닮았다고 해서 물메기라 부른다. 우리나라 동서 남해안에서 두루 잡히며, 정식 이름은 꼼치이나 지방에 따라 곰치라고도 부르고 물곰이라고 부르고 물텀벙이라고도 하고 물잠벵이라고도 한다.

물로 약간씩 형태는 다르지만서도. 물메기는 못생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데 예전에 어부들이 이 고기가 잡히면 쯧쯧 혀를 차며 다시 물에 던져 버렸는데 그 때 떨어지는 소리가 텀벙텀벙 한다고 해서 물텀벙이란 별칭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우가 전허 달라져서 없어서 못 먹는 귀하신 몸으로 탈바꿈 했다.

그 물텀벙이 금탱이가 되어 몸값이 하늘을 찌른다.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에도 '살이 매우 연하고 뼈가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적혀 있다. 물메기는 다른 어류 등도 그렇듯이 냉동보관을 하기보다는 잡자마자 바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물메기는 싱싱할 때는 물메기 회, 또는 메기물 회, 빠듯하게 말려서는 메기 찜으로 쓰인다. 꼽꼽하게 마른 메기는 손칼로 삐져서 긴긴 겨울 밤 간식으로 쓰면 그만인데, 초고추장만 있으면 술안주로도 딱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물메기 최고의 밋은 역시 물메기탕이 아닐까? 그것도 아침에 해장술 속풀이로 먹는 탕이 적격인 것을. 무와 대파를 쏭쏭 썰어 놓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맞춰 끓여야 물메기의 진가가 발휘된다. 간밤에 퍼 마셨던 술독이 단숨에 손을 들고 스르르 무장해제 해 버린다는 그 국물 맛 말이다. 비린내가 없을 뿐 아니라 맑고 담백하고 시원하다. 후루룩! 소리내어 국 들이키 듯 먹는 맛이 쏠쏠하다. 그것은 흐물흐물 일명 '물렁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맛보면 첫 술부터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아,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미식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번 주말엔 동호항 주변 인심 좋은 식당에 들러 꼭 물메기탕 한그릇 먹어보리라. 그것도 눈빛만 봐도 통하는 지기(知己랑 함께 한다면 더 무얼 바라리오만... 벌써부터 입 맛이 다셔진다. 어젯밤 한잔 술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뜨끔거리는 주당님들이여! 오늘 아침 물메기탕 한 그릇 챙기시는 것 잊지 마시라. 덤으로 아스파라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니아이신 성분이 세포 노화억제도 돕고, 기미 주근깨 제거에도 도움이 되고, 단백질 함유량이 높고 지방질이 적어 다이어트에도 좋고, 타우린 성분이 면역세포를 보호해주고, 눈의 피로까지 풀어준다고 하니 꿩먹고 알먹고 아니겠는가.

노산 이은상이 극찬한 조선시대 서산 휴정이 읊은 '삼몽사(三夢詞)'라는 시에서 '주인은 꿈 속에서 손님에게 얘기하고(주인몽설, 主人夢說)/ 손님도 주인에게 얘기하네(객몽설주인, 客夢說主人)/ 지금 두 꿈을 얘기하는 이 사람도 (금설이몽객, 今說二夢客)/ 역시 꿈속에 사람인 것을(역시몽중인, 亦是夢中人). 이는 주인과 손님이 각각 자기 꿈 속에서 상대방을 마주하고 얘기하는데 두 사람이 꿈 속에서 얘기한다고 말하는 자신도 꿈 속의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듯 어쩜 한바탕 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살이, 술 한 잔에 꿈같은 물메기탕 한 그릇으로 쉬어간들 어떠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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