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어 좋은 날

새해 보랏빛 꿈과 소망
얼레 바투 잡고 높이 높이 감아 올리며
고단한 삶의 편린들일랑
미륵산 너머로 훨훨 날려 보내세
에헤야 디야 송액영복*이로세

*송액영복(送厄迎福): '나쁜 것은 보내고 복은 부른다'는 말. 정월 대보름이 되면 '연(鳶)'에 송액영복이라는 말 등을 적어서 하늘로 날려 보냈다.

[시작(詩作)노트]

《푸른 창공에 연을 날리자》

"풀 먹인 연실에 내 마음 띄워 보내
저 멀리 외쳐본다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 고운 꿈을 싣고 날아라"

1979년도 대학 가요제 금상을 받은 라이너스의 '연' 가사이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류가 처음 그 꿈을 실어 바람에 날려 보낸 기구가 바로 연이다.

통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국의 서양화가 이중섭이 그린 '연을 띄우는 아이들' 그림도 정겹다.

오늘 날의 연(kite)은 단순하게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연은 군사, 종교, 과학, 그리고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풍요로운 역사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

연은 아시아에서 발명되었으나 정확한 기원은 추정만 되고 있다.

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인도네시아 슐라위시섬 남동부에 위치한 무나섬 중석기시대 동굴 그림으로, 기원전 9500~9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중국에서 연은 약 2800년 전에 처음 발명되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연은 동양의 전통놀이처럼 여겨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사랑을 받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도 연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200년경 초나라의 항우는 유방의 군사에 둘러싸여 필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었다. 이때 유방의 장수 한신은 소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연에 피리를 부착시켜 애절한 소리를 냄으로서 상대방 군사들의 심리를 교란시켜 사기를 떨어 뜨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또한 한신은 연을 띄워 거리를 측량하고, 신호용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군사적 목적으로도 연을 활용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연의 종류가 참 많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문양과 강렬한 색상이 조화를 이루어 특별히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통영전통연'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연과도 견줄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예술성과 함께 과학적인 우수성까지 갖춰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통영연은 문양의 아름다움이나 크기, 연날리기 기법 등에 있어서 우리나라 어느 지방 연과도 뚜렷이 구분된다. 앞으로 우리 '통영전통연'을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작업도 통영다운 문화 창달 역할의 일부가 될 듯 하다.

통영전통연은 약 30여종 된다고 하는데 아래까치당가리연, 윗까치당가리연, 수리당가리연, 돌쪽바지기연, 돌쪽바지기눈쟁이연, 댄방구쟁이연, 긴고리연, 치마당가리연, 반장눈쟁이연 등등 그 이름도 참으로 예쁘고 친근감이 든다.

전쟁사에 보면 연을 사용하여 전쟁에 승리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래전에 방영된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백제가 고구려의 성을 공략할 때 말갈족이 글라이더처럼 생긴 거대한 연을 타고 성을 넘는 장면이 나온다. 다소 황당한 면도 있지만 완전히 근거 없는 장면은 아닐 듯 하다.

삼국사기에는 647년에 "대신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최영장군이 탐라 정벌 때 연에 불을 붙여 날리는 책략을 사용하였다'라는 기록도 있다.

근대 실학자 신정준이 쓴 책차제(策車制)에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 포위되었을 때 정평구라는 인물이 대나무와 소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연인 비거(飛車)로 사람을 탈출시켰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임진왜란 중 왜적이 평양에 들어오자 계월향이 성안에서 연을 띄워, 김응서 장군에게 적정(敵情)을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이 전술 신호용으로 통영전통연(비연, 飛鳶)을 사용했다는 '이충무공 전술비연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부분을 자료화 하기 힘들고, 공식적으로도 확인이 어려운 사항이라고 하지만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적절한 스토리텔링 입히기는 가능하지 않을까?

서양에서도 연은 과학적 목적으로도 활용되었으나, 15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연의 기능을 통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다리의 디자인과 공법을 이론화 했다. 프랭클린은 1752년 번개가 치는 날, 연을 날려 번개가 일종의 전기현상 이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이를 이용해 피뢰침을 발명했다. 1749년에는 스코틀랜드의 기상학자인 알렉산더 윌슨이 고공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연에 온도계를 부착해서 날리기도 했다.

연은 비행기의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처음으로 글라이더를 만들어 직접 비행했던 독일의 오토릴리엔탈은 연을 가지고 항력(抗力, drag)과 양력(揚力, lift)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더 재미있고 놀라운 주장은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연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4세기경 타렌툼의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타스는 연으로 하늘을 나는 실험을 했다. 연이 하늘을 나는 원리는 베르누이의 정리로 설명 가능하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또한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또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연날리기는 연을 만들어 날리는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이다. 흔히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날리며, 액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로 대보름에는 연에 액(厄),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씨를 써서 연실을 끊어 멀리 날려 보낸다. 즉 그 해의 온갖 액운과 재앙을 연에 실어서 날려 보내고 복을 맞아 들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연을 날림으로써 땅의 기운을 담아 하늘에 올려보내는 풍습은 우리 민중의 생산과 풍요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연날리기는 민속 신앙적 의미도 갖고 있다. 연을 날리는 놀이는 생활의 긴장감을 풀어줌과 동시에 즐거움도 선사하였기에 오늘날 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송액영복(送厄迎福)'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은혜로움과 건강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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