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이야기"를 마음에 품은 뒤 겪은 변화다. 통영 인근 바다를 오가며 고래처럼 생긴 섬을 보거나 고래라는 글자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 보물을 얻은 느낌이랄까? 형상만 보아도 이런데 실제 고래를 보면 어떨까. 어느 날엔 통영운하에서 고래를 본 적도 있다(<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제195화, "운하에 고래가 산다", 2019년 2월 1일).

거제 둔덕면 학산리에 가면 '고래섬'이라 불리는 섬이 있다. 영락없는 고래 모양이다. 조용하게, 그러나 힘차게 남쪽 바다로 헤엄치는 모습이다. 성포 앞바다에도 고래섬이 있다. 실제 이름은 노루섬인데, 이 또한 고래 모양을 하고 있어 종종 고래섬으로 불린다. 바로 앞 바닷가에는 고래섬 이미지를 담은 카페가 있다. 소위 스토리 텔링이 돈이 되는 전형이다.

한산도 초입에도 고래섬이 있다. 두 개의 섬을 상, 하 죽도라 하는데, 상죽도가 영락없는 고래 모양이다. 대나무가 많아 죽도라지만, 임진왜란 때 대나무를 베어 화살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하지만, 내게는 고래섬이라는 이름이 더 가깝다. 이제는 고래섬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용남면 지도(紙島) 섬 또한 고래 모양이다. 바다 건너에서 바라보는 다른 고래섬과 달리 지도(地圖)를 펼쳐보면 돌고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여러 지명 유래설이 있지만, 돌고래 섬을 스토리텔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통영의 사신도를 꼽을 때 북현무에 해당하는 섬이라 이 또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이 높다(<최광수의 통영이야기> 283화 "'이마주'의 선율을 따라 사신도(四神島)를 거닐다", 2021년 3월 5일).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마음을 흔드는 고래는 바다에 사는 포유동물이다. 태로 새끼를 낳고, 모유를 먹여서 키운다. 허파로 숨을 쉬는 항온동물이다. 알로 수정하는 물고기가 아니다. 어류는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헤엄치는데, 고래는 위아래로 흔든다. 육상 포유동물이 걸을 때 상체와 하체를 접었다 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고향은 바다였다. 작은 유기물 덩어리에서 시작해 진화를 거듭하며 육상으로 진출했다. 그 한 갈래가 현생 인류다. 그런데 다시 바다로 돌아간 동물들이 있다. 고래를 비롯해 물개,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해달 등이다.

이 중에서 고래가 가장 먼저 바다로 돌아갔다. 6천만 년 전이다. 과학자들은 앞 지느러미의 뼈 모양으로 바다로 돌아간 시기를 추정한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파키케투스라는 육상 포유동물이 고래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가 늑대만 한 잡식성 동물이었다. 대륙 이동에 따른 지형 변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물고기를 잡아먹는 쪽으로 식성이 변화했다고 한다.

고래 이야기를 하며 떠오른 추억의 한 자락. 2001년 스리랑카 동북부 해안의 트링코말리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바닷물이 맑고 아름다워 한때 세계적인 휴양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방문 당시 스리랑카 내전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고,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져 있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리족과 소수민족 타밀족 사이의 분쟁으로 내전이 치열할 때였다. 분쟁의 접점 지역이었던 탓에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고 차량 수색을 여러 차례 거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피폐해진 마을을 재건하고, 상처 입은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 현장을 둘러보기 위한 일정이었다.

이후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분쟁이 종식되어 평화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더불어 앞바다를 찾아드는 수많은 고래 떼로 인해 세계적인 고래 관광지가 되었고, 주민들의 삶이 좋아졌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연안으로 밀려드는 바다 쓰레기로 인해 고래가 사라지고, 관광업도 몰락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물놀이하며 마을의 미래를 얘기했던 그날이 아련하다.

저자 주. 사진은 한산도 앞 상죽도 모습입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